6권 5책. 필사본. 저자가 만년에 정계에서 은퇴한 뒤에 노년을 보내면서 지난 날의 견문(見聞)이나 독서에서 얻은 견해들을 잡록형식으로 적은 글이다.
≪학강산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분야는 경학(經學)과 같은 유학사상인이다. 송대의 유학을 존숭하여 청대의 고증학을 비판하고 있다. 청나라의 학자들이 고증학을 실학(實學)이라 부르고 있는 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도리어 주경(主敬)과 구방(求放)하는 공부인 송유(宋儒)들의 학문태도를 실용(實用)으로 보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는 같은 시대에 활동하였던 정약용(丁若鏞)의 경학태도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그러나 이들이 모두 모기령(毛奇齡)을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학강산필≫의 많은 부분은 역사에 대한 비판과 평가이다. 이것은 중국의 경우와 우리 나라의 경우를 모두 언급하고 있다. 나머지는 문학에 대한 견해이다. 대개 조선 말기에 자주 거론되었던 ‘천기론(天機論)’에 대한 생각이다. 홍석주는 분명하고 논리적으로 천기론을 주장하였다.
홍석주는 시는 성정(性情)에 근본하지만 천기로 발현한다. 그래야 그 의경(意境)은 진지하고, 그 사(辭)는 유원(悠遠)하며, 그 기(氣)는 유동(流動)하게 된다. 그 용(用)은 감인(感人)이 주가 되어야 하고, 그 공(功)은 흥권징창(興勸懲創)에 돌려야 한다.
그 효(效)는 이풍역속(移風易俗)에 이르러야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종래의 효용론적 문학관을 답습하고는 있다. 그러나 시의 표출과정과 작용을 명료하게 집약해 놓았다. 조직과 꾸밈을 반대하고 진솔한 감정이 자연스럽게 유로(流露)된 작품이야말로 진실성을 획득하게 되어, 남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하였다.
천기를 주장하는 홍석주는 시의 형태에 있어서도 근체시보다는 고시(古詩)를 좋게 생각하였다. 특히, 사영운(謝靈運)이 부화(浮華)한 표현을 쓰기 시작하여 뒷날의 시도(詩道)에 손상을 주었다고 신랄하게 비난하였다. ≪학강산필≫은 1984년오성사(旿晟社)에서 영인하고 발행한 ≪연천전서 淵泉全書≫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