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문집 ()

한강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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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정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0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문신 · 학자, 정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8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680년(숙종 6) 허목(許穆)에 의해 편찬·간행되었다. 그의 서문에 편찬 경위가 잘 나타나 있다. 그는 정구의 문인으로, 직접 문집을 편찬하고 내용을 하나하나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속집과 별집은 허목이 직접 편찬에 참여하지 않았다. 속집과 별집은 본집을 편찬한 뒤에 다시 수집되는 자료를 그때그때 정리해 따로 간행한 듯하다. 이러한 사정은 내용 구성 체제나 서지 사항 등에서 잘 알 수 있다.

내용 구성면에서 보면, 본집·속집·별집의 항목 가운데 시·서·잡저의 항목 표제가 중복 제시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전체적으로 통일된 편찬체제가 아닌 듯하다. 서지 사항면에서 보면, 본집과 속집·별집의 판식이 다르다. 4주쌍변(四周雙邊)·유계(有界)·상하화문어미(上下花文魚尾) 등은 모두 같은데, 글의 행(行)과 한 행의 글자 수가 조금 다른 점이다. 또한, 본집은 반엽(半葉)에 12행이며 1행에 22자인데, 속집·별집은 10행 20자의 판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속집에는 본집·별집과 달리 간기 사항을 부기하고 있어, 각 편이 독자적으로 간행 되었음을 알게 한다. 즉, 권말에 부기된 ‘신축동중간(辛丑冬重刊)’이라는 간기는 본집보다 40년 뒤인 1721년(경종 1)이나, 100년 뒤인 1781년(정조 5)에 다시 간행된 사실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사항을 근거로, 본집·속집·별집의 편찬과 그 간행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서지적 사항

본집 12권, 속집 9권, 별집 3권, 합 24권 9책. 목판본. 규장각 도서·장서각 도서·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본집은 허목의 서문과 총목차, 그리고 본문의 순서로 편집되어 있으며, 권1에 시 41수, 만(挽) 26수, 권2에 소(疏) 8편, 차(箚) 10편, 계사 9편, 권3∼6에 서(書) 149편, 권7에 잡저 23편, 권8에 서 10편, 기 5편, 발 2편, 권9에 축문 41편, 제문 60편, 권10에 묘표·묘지명 13편, 권11·12에 행장 25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속집은 권1에 시 16수, 부 1수, 논 1편, 소 1편, 권2·3에 서 45편, 권4에 잡저 6편, 권5에 문 3편, 서 3편, 묘제문 8편, 권6에 행장 1편, 권7에 시 3수, 명 4편, 서 48편, 권8·9에 서 38편, 별집은 권1에 서 25편, 권2에 서 12편, 잡저 7편, 시 11수, 권3에 답문(答問) 3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본집 권2의 「계축차자(癸丑箚子)」에는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유폐와 영창대군(永昌大君)의 문제에 관련된 내용을 3차에 걸쳐 초안를 작성하고 있다. 「대사헌숙배후피혐계사(大司憲肅拜後避嫌啓辭)」는 대사헌으로 있을 때 임해군(臨海君)을 구하려다 호역(護逆)의 지목을 받고 사직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권3의 「여조사경(與趙士敬)」, 권4의 「상의예조계목(商議禮曹啓目)」, 권5의 「답예조판서(答禮曹判書)」 등은 예설에 관한 문의에 답한 내용으로, 복제(服制)와 예설에 관한 그의 해박한 고증과 이론을 엿볼 수 있다. 권7의 「서수사언인록후(書洙泗言仁錄後)」·「서경현속록후(書景賢續錄後)」·「천손하고칠석회변(天孫河鼓七夕會辯)」·「월조약회의(月朝約會議)」·「야복(野服)」, 권8의 「오선생예설분류(五先生禮說分類)」·「심경발휘서(心經發揮序)」·「함안사직단기(咸安社稷壇記)」 등은 전문적인 전적에 대한 논평과 향리의 습속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다.

권11의 「서천부원군정공행장(西川府院君鄭公行狀)」은 선조 때의 문신 정곤수(鄭崐壽)의 행장이다. 모두 20장에 달하는 장문으로, 그의 문장력을 엿볼 수 있다. 권12는 그의 외증조부 김굉필(金宏弼)을 비롯하여 김종직(金宗直)·남효온(南孝溫)·조광조(趙光祖) 등 30여 명의 전기를 저술한 것으로, 사우관계를 이해하는 자료이다.

속집의 특기 사항으로는 권4의 「도동서원원규(道東書院院規)」·「양호첩(養浩帖)」·「독서첩(讀書帖)」·「강법(講法)」 등 서원의 제도와 규약, 그리고 학문하는 자세 및 독서태도 등 잡다한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별집을 보면, 권3의 「답김희원문(答金希元問)」·「답장행원문(答張行原問)」·「답임탁이문(答任卓爾問)」 등에서 『태극도설(太極圖說)』에 관한 해석 문제와 한글 현토에 관한 세밀한 문제를 논의하고 있어, 문장가로서의 의미 분석 태도를 볼 수 있다.

그의 학문 성향이나 업적은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던 다음의 문헌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태극문변(太極問辨)』·『수사언인록(洙泗言仁錄)』·『오복연혁도(五服沿革圖)』·『심의제도(深衣制度)』·『관의(冠儀)』·『혼의(婚儀)』·『고문회수(古文會粹)』·『성현풍(聖賢風)』·『경현속록(景賢續錄)』 등은 그의 대표적 저술이다.

참고문헌

『한국유학사(韓國儒學史)』(배종호, 연세대학교출판부, 1974)
「한강(寒岡)의 지경론(持敬論)」(최승호, 『한국의 철학』13,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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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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