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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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문화
인물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고부장 등을 역임하며 고고학 전시에 공헌한 고고학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48년
사망 연도
1999년
본관
청주(淸州)
출생지
경기도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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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국립전주박물관장,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고부장 등을 역임하며 고고학 전시에 공헌한 고고학자.
내용

본관은 청주(淸州). 본명은 영희(永熙). 경기도 평택출생. 아버지 상복(相福)의 4남 2녀 중 3남이다. 평택 서정국민학교와 서울중·고등학교를 나와 1968년 서울대학교 고고인류학과에 입학한 뒤 1975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와 1976년부터 고고과 학예연구사로 근무하였다. 1978년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원에서 고고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84년부터 1989년까지 국립진주박물관장으로, 1990년부터 1993년까지는 국립전주박물관장으로 근무하였다. 1993년부터 1999년 11월 과로로 순직할 때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고고부장으로 봉직하였다. 순직한 뒤 홍조근정훈장이 추서되었다.

1975년 국립박물관의 서울 암사동 신석기유적의 제4차 발굴조사에 참여하면서부터 신석기시대 연구에 힘을 기울여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고학의 발전에도 노력을 기울여 한국고고학회의 평의원과 운영위원을 맡아 활약하였고, 한국신석기연구회의 창립을 주도하였으며,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동 연구회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박물관 직원으로서의 이점을 살려 유물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통해 학문적이면서도 교육적이며 주제가 뚜렷한 전시를 갖고자 노력하였다. 「한국의 고대국가형성」·「백제」등의 특별전시회를 기획하여 고고학전시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신축 국립박물관의 개관전시를 위해서도 진력하였다.

연구분야를 신석기문화로 좁혀 천착함으로써 학문적 깊이를 더하였다. 관심의 폭을 우리 민족의 기원과 형성에 관한 부분까지 넓혀 한국선사문화의 흐름을 체계화하려 하였으나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됨으로써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저서로는『한국민족의 기원과 형성(상)』(1996, 공저)이 있다. 주요 유적발굴보고서로는 『연대도Ⅰ』(1993)·『암사동』(1994) 등이 있다. 논문은 「한반도 중·서부지방의 신석기문화」(1978)·「각형토기고」(1983)·「한반도 신석기시대의 지역성(韓半島 新石器時代の地域性)」(1992) 등 30여 편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고고소식』99-6(한국고고학회,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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