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헌집 ()

해헌문집/해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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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문헌
조선 후기의 학자, 황명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1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의 학자, 황명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71년 황명하의 10대손 황진학(黃鎭鶴)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이주원(李周遠)·백순우(白淳愚)의 서문, 권말에 남병기(南炳基)와 황진학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7권 3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3에 시 478수, 권4에 만사 18수, 서(書) 21편, 잡저 1편, 대책(對策) 3편, 권5에 서(序) 5편, 기(記) 1편, 발문 3편, 제문 4편, 비명 1편, 가전(家傳) 2편, 송(頌) 1편, 정문(呈文) 8편, 권6·7에 부록으로 가장 1편, 행장 1편, 묘갈명 2편, 만사 18편, 제문 4편, 상량문 1편, 하암정기(霞巖亭記) 1편, 제현수창시(諸賢酬唱詩) 54수, 제현왕복서(諸賢往復書) 24편, 서(序), 교유록(交遊錄), 교유록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성리(性理)에 밝아 시에도 인의(仁義)가 함축되어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영산십영(英山十詠)」·「유대관령숙오봉서원(踰大關嶺宿五峰書院)」 등 연작 기행시가 다수 있다. 「남유법광사구점(南遊法廣寺口占)」에서는 “법광이란 명칭을 내 비로소 알겠노라/ 일찍이 불교는 널리 베푸는 것이었거늘/ 천년 후 신라의 자취 오백여 년 간 옛 절터에 금불상과 경전은 병화를 입었으나/ 비단 같은 꽃이 만발하고 상서로운 향기를 내는 꽃가지가 있구나/ 옛 나라를 돌아보니 산하는 그대로인데/ 번화롭던 성대(盛代)는 그 어느 때였던가!”라고 읊었다. 그밖에 친구와 이별할 때 쓴 증시(贈詩)와 차운(次韻)한 시도 많다.

잡저의 「유교원제생문(諭校院諸生文)」은 향교의 교생과 서원의 원생에게 학문에 정진하라고 권유한 글로서, 가문을 빛내고 나라를 바르게 하고 시대를 구할 인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향교와 서원에서 선비를 기르는 뜻이라고 하였다.

서(序) 가운데 「소곡동안서(蘇谷洞案序)」와 「기성향안서(箕城鄕案序)」 등에서는 동안과 향안을 통해 사족 중심의 향촌 사회의 질서를 확립하고자 하는 필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해당야사서(懈堂野史序)」는 저자가 『열성조실록(列聖朝實錄)』을 편집해 14권을 만들고 붙인 서문이다. 당파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는 자들이 잘못된 사관으로 자신에게 유리하게 씀으로써 나타나는 병폐를 지적하고, 이 시기 역사 서술의 한 동향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정진휼청도제조장(呈賑恤廳都提調狀)」은 저자가 극심한 흉년을 만난 근동의 70여 호를 구하고자 사재 140여 석을 내면서 진휼청의 도제조에게 제출한 글이다. 「정순상문(呈巡相文)」은 군민을 위해 관찰사에게 올린 글이다. 흉년을 맞아 민심이 흉흉한 데 대해 이를 효유할 대책 10가지로 평해군의 부세 제도, 이서배(吏胥輩)의 수탈 문제 등을 중심으로 사족의 입장에서 서술하였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의 향촌 사족의 문학적 수준과 그들의 논리를 엿볼 수 있는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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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구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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