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group)

경제
단체
1947년에 설립된 현대건설을 모체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주회사로 한 기업집단.
목차
정의
1947년에 설립된 현대건설을 모체로 하여 이루어졌으며 현대엘리베이터를 지주회사로 한 기업집단.
연원 및 변천

현대그룹은 1947년 5월에 현대건설주식회사의 전신인 현대토건사를 설립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19세의 나이인 1934년에 ‘복흥상회’라는 쌀가게 점원으로 일하면서 장래 사업의 길을 모색하였고, 1938년에 가게를 인수한 후 ‘경일상회’를 개업하면서 사업의 기틀을 다져나갔다. 1940년부터는 자동차수리공장인 합자회사 아도서비스를 운영하였으며, 이를 기반으로 하여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50년 1월에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현대토건사와 합병, 현대건설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바로 이 현대건설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각 분야의 자회사들을 설립함으로써 오늘날 현대그룹의 모기업이 되었다.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 회장은 동생 정세영과 함께 1967년 12월에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였고, 1970년대에 와서는 산업 각 분야에 걸쳐 새로운 기업들을 지속적으로 건립하였다. 현대건설은 공사에 필요한 자재 공급을 위하여 1962년에 단양시멘트 공장을 건설하였는데, 이를 기반으로 하여 1970년 1월 현대시멘트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1971년 6월에는 금강개발주식회사(현대백화점의 전신)를, 1973년 12월에는 현대중공업주식회사를, 1974년 2월에는 현대엔지니어링주식회사와 현대자동차서비스주식회사를, 1975년 4월에는 현대미포조선주식회사를, 1976년 3월에는 아세아상선주식회사(HMM의 전신)와 12월에 현대종합상사주식회사를, 1977년 7월에는 현대정공주식회사를 각각 설립하였다.

현대그룹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도 계열회사를 확장해 나갔다. 1983년 2월에는 현대전자주식회사를, 1984년 5월 현대엘리베이터주식회사를, 1986년 11월에는 현대산업개발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리고 1991년 10월에는 충청남도 대산단지에 현대석유화학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명실공이 각 산업에 걸쳐 다양한 계열사를 거느린 현대그룹으로 위상을 갖추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대그룹의 각 계열사들은 각 업종 간에 긴밀한 연결고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 기본 토대는 모회사인 현대건설이었다. 건설업은 토목과 건축이라는 사업 특성상 다양한 자재와 장비들을 필요로 하였다. 토목공사를 위한 중장비나 자재운반에 필요한 운송차량 등은 건설장비의 중요한 분야에 속하였는데, 이러한 필요성에 의해 현대자동차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현대시멘트주식회사는 건설공사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인 시멘트를 자체 공급하기 위해 세운 회사이고, 금강개발주식회사는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공사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는 회사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며, 후에 현대백화점으로 발전하였다. 현대건설은 1972년에 울산조선소를 건설하였고, 그 다음해인 1973년에는 이 조선소의 상호가 현대중공업주식회사로 바뀌었다. 1974년에 설립된 현대엔지니어링주식회사 역시 현대건설이 수주한 공사의 설계를 위해, 현대자동차서비스주식회사 또한 건설장비 정비를 위해 필수적인 사업이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75년에 설립된 현대미포조선주식회사는 처음에 배를 수리하는 수리조선소로 출발하였다가 나중에 중형선박제조회사로 탈바꿈하였는데, 이 회사의 탄생은 현대중공업주식회사와 연계 고리를 갖고 있었다. 1976년에 설립한 아세아상선주식회사와 현대종합상사주식회사는 자동차·조선 등의 수출을 위해 만든 통상 및 무역 업종의 회사들이다.

1980년대에는 반도체 산업을 미래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현대전자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밖에 현대엘리베이터주식회사는 현대건설의 건물 공사에 엘리베이터를 공급하는 회사로 출발하였고, 현대산업개발주식회사는 현대건설의 아파트 건설을 담당하는 또 다른 브랜드로 세운 회사였다. 현대건설은 한때 3개 업체를 통해 아파트를 건설·공급하였는데, 현대건설 건설본부에서 주관하는 자체 브랜드를 비롯하여 현대산업개발과 고려산업개발에서도 ‘현대아파트’란 브랜드로 각종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였다. 고려산업개발은 1976년 고려항만개발주식회사로 설립된 뒤 1984년 12월 고려산업개발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을 한 회사로, 1988년 주택건설업자로 등록하면서 아파트 건설사업에 참여하였다.

이렇게 현대건설을 모기업으로 하여 설립된 현대그룹의 계열사는 1990년 기준 총 41개 회사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건설·자동차·기계·조선·제철·무역·전자 등 다양한 부문에 걸쳐 진출하였다.

현대그룹은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현대자동차와 함께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으로 거듭났다. 1999년 2월에는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아호에서 따온 아산주식회사를 세웠는데, 이 회사는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사업 등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전담하였다.

2000년 3월에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두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2남과 5남 사이에 본격적인 경영권 다툼이 벌어졌다. 그 결과 현대그룹 경영권은 5남 정몽헌 회장에게 넘어갔으며, 이때 2남인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현대자동차 등 10개사를 이끌고 계열 분리하였다.

이렇게 되자 2000년 5월 정주영 명예회장은 명예회장직에서도 사퇴를 하였고, 다음 해인 2001년 3월에 타계하였다. 이를 계기로 하여 2001년에는 현대그룹의 모기업인 현대건설이 유동성 위기로 채권단에 경영권이 이관되었으며, 다음 해인 2002년 2월에 현대중공업주식회사도 계열사였던 현대미포조선과 함께 현대그룹으로부터 공식 분리되었다. 이때 현대중공업그룹으로 재출발하면서 6남인 정몽준 회장이 경영권을 인수하였다. 그리고 바로 그 직후인 3월에 현대전자주식회사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상호가 바뀌었으며, 8월에는 현대그룹이 채권단에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에 대한 경영권 포기각서를 내면서 그룹으로부터 분리되어 현대그룹 계열사와는 전혀 다른 독립 기업이 되었다. 잇따라 현대종합상사주식회사도 2003년에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어 채권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갔다.

한편 2002년에 아산주식회사는 현대아산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하였으며, 2003년에는 개성공업지구 공사와 함께 본격적으로 금강산 육로관광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에 정몽헌 회장이 대북송금과 정치권 비자금 사건 등으로 인하여 자살하면서, 현대그룹의 경영권은 그의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승계를 받았다. 이때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금강고려화학(현재 KCC) 정상영 회장이 현대그룹 인수의지를 밝혀 다시 경영권 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정은 회장이 현대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엘리베이터주식회사 우호지분을 40%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방어하였다.

2003년부터 시작된 금강산 육로관광은 2008년 7월 금강산관광지구에서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사업이 중단되었다. 이로써 현대아산주식회사는 큰 타격을 받았다.

정주영 명예회장이 ‘소떼 방북’으로 금강산광관산업의 길을 열었던 1999년까지만 해도 현대그룹은 49개 계열사를 가진 대그룹이었었다. 그러나 그동안 매각, 분리, 독립, 합병 등으로 인하여 2016년 말 현재 현대그룹은 크게 사업영역이 축소되어 현대엘리베이터·현대아산·현대유엔아이·현대경제연구원·현대투자네트워크·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불룸비스타 등만 계열사로 남아 있다.

현황

현대건설을 모체로 하여 성장한 현대그룹은 2000년대 이후 계열 분리가 되면서 그 규모가 많이 축소되었다.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인 현대엘리베이터의 2016년 말 기준 매출액 1조 7,589억 원이며, 영업이익은 1,861억 원이다.

참고문헌

『2017년 매경한국기업연감』(매경출판사, 2017)
『현대건설 60년사』(현대건설, 2008)
현대그룹(www.hyundaigroup.com)
집필자
엄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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