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유(玄遊)의 출신과 이력에 관한 사항은 자세하지 않다. 일부 승전과 불교 관련 서적 등에 그의 행적에 관한 편린(片鱗)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에 따르면 현유는 천성이 부드럽고 고상하였으며 까다롭지 않아 남과 잘 화합하였다고 한다. 현유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두 가지 이로움을 추구할 것을 결심하고 진리를 찾으려는 의지를 품었다고 한다. 그는 때로는 술잔을 타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깊은 골짜기에 집을 지어 사색하기도 하였다.
현유는 일찍이 당나라로 건너가 승철(僧哲)선사를 정성껏 모시면서 예의를 갖추어 불교의 깊은 뜻을 물었다. 현유는 석존의 자취를 사모하여 스승 승철과 함께 배를 타고 인도에 들어가 여러 불적지를 순례하였다. 하지만 그는 귀국하는 길에 동인도에 머무르다가 입적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승려 의정(義淨)이 지은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에서는 현유를 “불가(佛家)의 동량(棟梁)이요, 승도(僧徒)의 영수(領袖)”라고 높이 평가하였다. 현유는 고구려 유민 출신인 원표(元表)와 함께 인도를 방문한 고구려의 대표적인 천축구법승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