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수묵담채로 그렸고, 크기는 세로 121㎝, 가로 59㎝이다. 그림의 제목을 적은 상단 부분은 전하지 않고, 중단의 계회 장면(契會場面)과 하단의 좌목(座目)만 남아 있다. 그러나 계회에 참석하였던 인물들의 약전(略傳) 사항을 적은 좌목에 의거하여 이 그림이 호조(戶曹)의 전직 및 현직 정랑과 좌랑, 즉 낭관(郎官)들이 가진 계회를 계기로 제작한 작품이고, 1550년경에 제작되었음이 확인된다.
당시 계회에 참석한 인물은 안홍(安鴻), 이지신(李之信), 강욱(姜昱), 신희복(愼希復), 유강(兪絳), 김익(金瀷), 신여집(申汝楫), 황준량(黃俊良) 등이었다.
「호조낭관계회도」는 16세기 중엽에 나타난 계회도 및 화풍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어 매우 중요하다. 즉 16세기 중엽 이전의 계회도들은 산수 배경을 위주로 하고 계회 장면 자체는 작게 상징적으로만 표현하였다. 그리고 철저하게 안견파(安堅派) 화풍을 따르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 계회도에서는 계회 장면이 산수 배경 못지않게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 또 안견파 화풍은 잔영만 남기고 새로운 화풍이 두드러지게 반영되어 있다. 이전의 계회도들에서는 모임이 야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통례였으나 「호조낭관계회도」에서는 실내에서 계회가 열리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 점도 크게 달라진 양상이다.
계원들은 의관을 정제하고, 호조판서인 듯한 인물을 중심으로 좌우로 둥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인물들은 상석인 실내의 안쪽 중앙으로 갈수록 크게, 말석인 문가로 올수록 작은 크기로 표현되어 있다. 즉 인물들의 표현에 역원근법(逆遠近法)이 적용된 것이다. 이는 계원들의 관등 서열과 중요성에 따라 크기를 달리해 묘사한 결과이다. 이 밖에 건물 표현에 있어서 시각을 다양하게 나타내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특징은 이 계회도가 그 이전의 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16세기 중엽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호조낭관계회도」가 제작된 이후의 계회도는 그 이전의 계회도와는 현저한 차이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