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대유(大囿), 호는 안와(安窩). 홍중기(洪重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홍현보(洪鉉輔)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이며, 어머니는 이집(李潗)의 딸이다.
1761년(영조 37)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교리를 거쳐, 1763년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뽑혔으나 통신사가 고모부인 조엄(趙曮)으로 교체되면서 친혐으로 종사관도 김상익(金相翊)으로 교체되었다. 그 뒤 보덕·예조참의·좌부승지·대사성·전라도관찰사·대사헌을 역임, 1773년 도승지, 이어 지돈녕부사를 거쳐 1775년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1777년(정조 1) 6월 장봉 만호(長峰萬戶)에 보임되었다가 같은 달에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안와유고(安窩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