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부 애정전기소설과 후반부 영웅소설이 복합된 성격의 작품으로,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원나라 무종 황제 대덕 원년에 양주 땅 남원부에 잠영거족의 후예인 오방이 은거하며 4남매를 두었다. 최 학사의 아들 흥가와 오방의 장녀 홍낭이 정혼하여, 최가에서 홍낭에게 금봉채(金鳳釵)를 신물(信物)로 준다.
최 학사의 누이인 왕사도의 부인은 슬하에 아들 왕창렬이 있는데, 왕창렬은 어린 나이에 등과한다. 이때 강남에 흉년이 들고 도적이 창궐하여 왕창렬이 안찰사로 가게 되는데, 그를 돕기 위해 최 학사가 가속을 이끌고 함께 강남으로 간다. 왕창렬은 3년간 크게 왕화를 이루었으나, 최흥가는 10년이 넘도록 홍낭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아 홍낭은 병을 얻어 죽는다.
10년 만에 최흥가가 오방의 집에 찾아와, 그간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 거듭 삼년상을 치르느라 소식을 전하지 못했음을 말한다. 홍낭의 넋이 여동생 경랑의 몸에 들어가 흥가와 1년간 사랑을 누린 후 떠난다. 흥가는 홍낭이 떠나면서 준 책 『음양경』을 익혀 무과에 급제하여 도원수가 되고, 왕창렬은 병부상서 겸 부원수가 된다. 천자의 누이인 초왕 왕비는 슬하의 17세 된 공주를 최흥가에게 사혼(賜婚)케 한다.
강성한 체질의 남만 철인국이 남경을 침략함에 최 원수(최흥가)가 신기(神技)로써 무찌른다. 초왕 공주는 남복으로 갈아입고 이름을 유통길이라 하여 선봉장으로 활약한다. 최 원수는 철인국의 인종 70만을 진멸하고 귀환한다. 형주 백제성에 머무는 중에, 동해 광연왕의 장자 뇌진의 주1 강요에 시달리는 남해 광이왕의 공주를 구해준다.
초국 왕이 오방의 딸 경랑을 양녀로 삼아 연양 공주에, 남해 광이왕의 공주를 채양 공주에 봉하여 초국 별궁에 함께 거하게 한다. 흥가는 회군하여 대사마대장군도원수에 태사공을 겸하게 되고, 두 공주와 성례한다. 백용담 용왕의 공주가 찾아오자 천자에게 전말을 아뢰니, 천자가 그녀에게 백씨 성을 하사하고 첩여에 봉하여 흥가와 혼례를 치르게 한다. 흥가는 벽파강가 도원봉 아래에 부마궁을 지어 자녀를 많이 두고 부귀를 누린다.
최근 논의에 따르면 이 작품 창작에 주요한 영향을 끼친 작품은 중국 명나라 전기소설집 『전등신화』에 수록된 「금봉채기(金鳳釵記)」임이 밝혀졌다. 죽어서도 정혼자를 잊지 못하고 동생의 몸에 빙의된 ‘오흥낭’과 그녀의 정혼자였던 ‘최흥가’와의 짧은 만남과 이별을 다루고 있는 내용인데, 「홍랑전」의 전반부와 비교해 보면 서사 단락, 등장인물의 이름, 역할 등에서 두 작품이 밀접한 수용 관계를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홍랑전」의 전반부 애정담은 「금봉채기」에서 차용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홍랑전」은 인귀(人鬼) 교환 화소가 삽입된 전기소설의 구조를 답습하면서도, 초월적 존재(후토 부인)를 등장시켜 영웅소설로 그 성격이 변화된 작품이다. 이는 20세기 초반까지 이어지는 고전소설의 창작과 통속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는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