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중효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성원(聖源)
백서헌(栢西軒), 소와(疎窩)
시호
효민(孝敏)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08년(숙종 34)
사망 연도
1772년(영조 48)
본관
풍산(豊山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
주요 관직
대사간|공조참의|호조참판|대사헌
정의
조선 후기에, 대사헌, 한성부좌윤,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원(聖源), 호는 백서헌(栢西軒)·소와(疎窩). 원주에서 살았다. 증 좌찬성 홍탁(洪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주문(洪柱文)이고, 아버지는 우부승지 홍만기(洪萬紀)이며, 어머니는 이열(李說)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40년(영조 16) 진사로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정언·장령·홍문관교리·필선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지내고 1757년 동래부사가 되었다.

뒤이어 대사간·공조참의·호조참판을 지내고, 1763년에 주청사(奏請使)의 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766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한성부좌윤과 형조 및 예조의 판서를 지냈다.

영조의 사랑과 대우가 두터웠으나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죽은 이후로는 거의 향리에서 떠나지 않은 채 대사헌 이후의 벼슬은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경전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시(詩)에 뛰어났으며, 만년에 글씨에도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소와집』·『학본내외편(學本內外篇)』·『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예기강목고이(禮記綱目考異)』 등이 있다. 시호는 효민(孝敏)이다.

참고문헌

『영조실록(英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만성대동보(萬姓大同譜)』
『이계집(耳溪集)』
집필자
한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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