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성원(聖源), 호는 백서헌(栢西軒)·소와(疎窩). 원주에서 살았다. 증 좌찬성 홍탁(洪𩆸)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홍주문(洪柱文)이고, 아버지는 우부승지 홍만기(洪萬紀)이며, 어머니는 이열(李說)의 딸이다.
1740년(영조 16) 진사로 증광문과에 장원하여 성균관전적·병조좌랑·정언·장령·홍문관교리·필선 등의 청요직(淸要職)을 지내고 1757년 동래부사가 되었다.
뒤이어 대사간·공조참의·호조참판을 지내고, 1763년에 주청사(奏請使)의 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766년 대사헌이 되고 이어 한성부좌윤과 형조 및 예조의 판서를 지냈다.
영조의 사랑과 대우가 두터웠으나 사도세자(思悼世子)가 죽은 이후로는 거의 향리에서 떠나지 않은 채 대사헌 이후의 벼슬은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경전에 마음을 쏟으면서도 시(詩)에 뛰어났으며, 만년에 글씨에도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소와집』·『학본내외편(學本內外篇)』·『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예기강목고이(禮記綱目考異)』 등이 있다. 시호는 효민(孝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