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5.5m. 전체 부재를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사자탑은 경주의 불국사 다보탑(佛國寺多寶塔)과 더불어 우수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현재 화엄사 가람 중심에서 서북방의 ‘효대(孝臺)’라고 불리는 높은 대지에 건립되어 있는데, 이 탑의 바로 앞에는 석등 1기가 배치되어 있어서 본래부터 이 장소가 석탑을 세우기 위하여 마련된 곳임을 알 수 있다.
기본조형은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얹고 그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놓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각형과 원호와 또 하나의 각형 굄 순서로 높직한 3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하층기단을 받고 있다.
하층기단 면석 각 면에는 양쪽 우주가 각출되었을 뿐 중간에는 탱주가 없다. 그러나 각 면에는 고식(古式)의 큼직한 안상(眼象)을 3구씩 오목새김하고 그 안에 천인상(天人像)을 1좌씩 12구를 돋을새김하였다. 보관과 영락(瓔珞)으로 동체(胴體: 몸체)를 장식하고 천의(天衣)를 공중에 휘날리며 앉은 자세는 모두 같으나, 연화대 위에 앉은 법석과 지물(持物)은 각기 다르다.
어떤 좌상은 악기를 들어 연주하고 있고 혹은 팔을 벌려 춤을 추고 있으며 어떤 천인은 꽃을 바쳐 공양하고 있다. 이 여러 천인상들은 모두 불천(佛天: 부처의 존칭)을 찬미하고 있는 자세로 보인다.
상층기단은 우주를 대신하여 연화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암수 두 쌍의 사자를 한마리씩 지주(支柱) 삼아 네 귀에 배치하고, 정상에도 하대와 대칭되게 연화대를 얹어 널찍한 갑석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 중앙에는 또한 찰주(擦柱: 탑의 중심기둥) 대신 연화대 위에 합장한 대덕(大德)의 입상을 안치하고 갑석의 하면 중앙에도 연화문을 장식하여 천개(天蓋)를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네 귀에 앉은 석사자상과 중앙에 서 있는 대덕의 모습이다. 네 마리의 석사자는 상하 앙복련화대(仰覆蓮花臺) 위에 앞발을 뻗고 뒷발을 구부려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곧 불국사 다보탑의 석사자상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원각한 대덕의 입상은 얼굴의 인상이나 몸에 걸친 가사의 문양과 균형 잡힌 체구 등에서 당시의 불상과도 같은 조성수법을 보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대덕은 사자상과는 달리 머리가 갑석에 붙지 않고 있으므로 갑석은 4구의 사자만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
그러므로 네 마리의 사자를 일반형 석탑의 상층기단 부재에 비한다면, 곧 각 면의 양쪽 우주로 볼 수 있고 혹은 불국사다보탑 기단부의 방형4주(方形四柱)와도 비유할 수 있는 구실을 하고 있다. 상층기단 갑석은 1매석으로 만들어지고 그 상면에는 2단의 굄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고 있는데, 이러한 수법은 곧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탑신부는 옥신과 옥개석이 각기 1석씩으로서 일반형 석탑의 탑신부와 같으나 초층옥신석 4면에 각기 문비형(門扉形)을 새기고, 그 좌우로 여러 가지 존상(尊像)을 조각하였다. 즉 정면에는 인왕상, 양측면에는 사천왕상, 그리고 뒷면에는 보살상을 돋을새김하여 장엄하다.
이 위의 2·3층 옥신석은 초층과는 전혀 달리 양쪽 우주가 정연하게 각출되었을 뿐 아무런 장식조각이 없다. 옥개석은 초층부터 3층이 모두 같은 형식으로서 처마의 받침이 5단씩이고 상면 중앙에는 2단의 각형 굄을 각출하여 그 위에 부재를 받게 되어 있다.
낙수면이 평박하고 네 귀 전각의 반전이 예리하여 경쾌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것은 신라 성대(盛代)의 석탑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며, 상륜부는 노반석 위에 복발만이 원형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석탑의 건립연대는 각 부의 조각수법이나 건조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성대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사자석탑으로는 유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