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주(黃國柱)는 1909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다. 서울에서 배재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를 따라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로 전학했다. 그 후 서울로 유학을 떠나 사직동의 법률학원(법정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졸업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간도로 다시 돌아온 뒤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용정 중앙장로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황국주는 1929년 주1를여행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백일기도 과정에서 비상한 종교 체험을 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1931년 수십 명의 추종자와 함께 이른바 '새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났다. 간도 용정에서 출발하여 함경도를 거쳐 서울까지 가는 코스로서 순례 도중 곳곳에서 부흥 집회를 가졌다. 서울에서의 집회 이후에는 추종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전국 각지로 보냈다.
황국주의 이름 '국주'는 '구주'와 발음이 비슷하였고 길게 기른 머리와 수염은 사진 속의 예수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를 예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 평양에 근거를 두고 개신교 잡지 『신앙생활』을 발간하던 김인서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황국주는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 이적도 예수의 이적"을 외치면서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화"하였다. 이로 인해 주류 교회에서 위험시하는 인물이 되었다.
1933년 11월 『영계(靈界)』라는 신앙 잡지를 간행하였는데 현재 창간호만 전하고 있다. 그가 직접 쓴 창간사와 기도문, 그리고 '인류평화'라는 제목의 글에는 “도덕적 신령적 생활” 및 "절대신종"의 삶이 강조되고 있다. 1933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한준명(韓俊明) · 유명화(劉明花) 등과 함께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부흥회 초빙을 금지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1952년 대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신앙 형태는 1930년대 개신교계 일각에 등장한 메시아운동의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교단으로 조직화되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