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국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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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인물
1930년대 초반,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 메시아 운동가.
이칭
필명
천우생(天愚生)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9년
사망 연도
1952년
출생지
황해도 장연
주요 경력
메시아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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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황국주는 1930년대 초반에 출현하여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 메시아 운동가이다. 그는 종교 체험 이후 추종자들과 함께 한반도 각지를 도보로 여행하는 '새예루살렘'으로의 순례를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이목을 끌었지만 주류 교계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목차
정의
1930년대 초반, 자신을 예수와 동일시한 메시아 운동가.
인적사항

황국주(黃國柱)는 1909년 황해도 장연에서 출생하였다. 서울에서 배재학교에 다니다가 부모를 따라 간도 용정 은진중학교로 전학했다. 그 후 서울로 유학을 떠나 사직동의 법률학원(법정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졸업 여부는 확실하지 않으나, 간도로 다시 돌아온 뒤 아버지가 장로로 있는 용정 중앙장로교회에서 유년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했다.

주요 활동

황국주는 1929년 주1를여행하면서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강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 백일기도 과정에서 비상한 종교 체험을 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면서 그의 주위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1931년 수십 명의 추종자와 함께 이른바 '새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의 길을 떠났다. 간도 용정에서 출발하여 함경도를 거쳐 서울까지 가는 코스로서 순례 도중 곳곳에서 부흥 집회를 가졌다. 서울에서의 집회 이후에는 추종자들을 소그룹으로 나누어 전국 각지로 보냈다.

황국주의 이름 '국주'는 '구주'와 발음이 비슷하였고 길게 기른 머리와 수염은 사진 속의 예수와 비슷하게 보였기 때문에 그를 예수와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930년대 평양에 근거를 두고 개신교 잡지 『신앙생활』을 발간하던 김인서의 회고에 의하면, 당시 황국주는 "머리도 예수의 머리, 피도 예수의 피, 마음도 예수의 마음, 이적도 예수의 이적"을 외치면서 자신을 전적으로 "예수화"하였다. 이로 인해 주류 교회에서 위험시하는 인물이 되었다.

1933년 11월 『영계(靈界)』라는 신앙 잡지를 간행하였는데 현재 창간호만 전하고 있다. 그가 직접 쓴 창간사와 기도문, 그리고 '인류평화'라는 제목의 글에는 “도덕적 신령적 생활” 및 "절대신종"의 삶이 강조되고 있다. 1933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는 한준명(韓俊明) · 유명화(劉明花) 등과 함께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부흥회 초빙을 금지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행적은 잘 알려지지 않지만, 1952년 대구에서 사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신앙 형태는 1930년대 개신교계 일각에 등장한 메시아운동의 흐름 속에 자리 잡고 있지만 교단으로 조직화되지는 않았다.

참고문헌

단행본

김남식, 『일제하(日帝下) 한국교회소종파운동연구(韓國敎會小宗派運動硏究)』 (새순출판사, 1987)

논문

민경배, 「한국교회(韓國敎會)의 신비주의사(神秘主義史)」(『기독교사상』 156, 대한기독교서회, 1971)
민경배, 「한국교회(韓國敎會)의 종파(宗派)의 계보연구(系譜硏究)」 (『신학사상』 Ⅳ, 한국신학연구소, 1974)
최중현, 「황국주 재조명을 위한 소고(小考)」 (『韓國宗敎史硏究』 8, 한국종교사학회, 2000)
최중현, 「황국주 '새예루살렘순례'의 연도(年度)에 관한 소고」 (『신종교연구』 4, 한국신종교학회, 2001)
주석
주1

러시아 시베리아 동남부, 동해 연안에 있는 항구 도시. 시베리아 횡단 철도의 동쪽 종착점이며 러시아 함대의 기지가 있다. 기계ㆍ차량ㆍ조선ㆍ제재ㆍ제유 따위의 공업도 발달하였다. 우리말샘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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