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5월『문장(文章)』 제4호에 발표되었으며, 1949년 수선사와 인간사에서 김동리의 여러 단편소설을 묶어『황토기』를 간행하였으며, 이후 1959년 인간사에서『황토기』증보초판을 간행하였다. 우리의 구전적인 설화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절맥(絶脈)의 모티프(motif) 또는 상룡(傷龍)의 모티프 등 지역창조의 연기설화(緣起說話)를 전경(前景)으로 한 가운데, 이와 병렬하여 중심이야기를 제시함으로써 설화와 소설의 유기성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초두에는 용이 등천의 기회를 놓치고 굴러 떨어져 흘린 피요, 혈을 찔려 맥이 끊어진 산이 흘린 피로 이루어졌다는 상룡설(傷龍說) 및 절맥설(絶脈說)의 황토골 유래로써, 추락과 저주 및 거세의 함축적 의미를 제시한다. 이러한 전락과 하강 및 거세의 숙명을 상속받은 황토골에서 억쇠와 득보라는 두 사람의 장사가 무모한 힘겨룸을 벌인다.
억쇠는 원래 황토골의 타고난 장사이지만, 장사가 나면 불길한 조짐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속신(俗信)과 아버지의 경고 때문에, 힘을 써보고 싶은 충동은 항상 느끼나 좀처럼 힘을 써보지 못한 채, 한번 힘을 제대로 쓸 날을 기다리며 시간을 허송한다. 분이의 주막에서 술 마시는 것으로 소일하던 어느 날, 억쇠는 득보라는 또 다른 장사를 만나 분이와 더불어 살게 되며, 분이를 트집 잡아 이들은 싸움을 벌이게 된다.
그 뒤 억쇠가 얌전한 설희를 들여앉히자 설희에게 마음을 둔 득보는 다시 억쇠와 격렬한 몸싸움을 벌인다. 그런데 이를 질투하던 분이가 설희를 죽이고 득보마저 찌른 채 달아나버리자, 득보는 수척한 몸으로 분이를 찾아 떠난다. 얼마 뒤 득보가 분이와의 사이에 낳은 딸만을 데리고 돌아오자, 이들은 이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큰 싸움을 향하여 용냇가로 내려간다.
황토기의 초두에 제시된 설화는 추락·저주·거세라는 이 작품 내용의 전경적인 결구나 주제의 암시를 의미할 뿐 아니라, 구원과 희생이 아닌 저주받은 피의 상속성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것은 흔히 김동리 문학에 전제되어 있는 원초적인 경험의 틀이다.
치솟는 힘을 바르게 써보지 못하고 있는 억쇠의 삶과 유랑의 삶을 사는 득보의 편력, 그들이 벌이는 무모한 힘겨룸의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전설적인 만담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의 초두에서 밝힌 절맥설의 틀과 유기화시켜 볼 경우, 저주받은 운명의 땅인 우리나라의 상황을 상징화한 작품이라고도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