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금승리 장수황씨 선산에 위치한다. 1976년 8월 27일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황희(黃喜, 1363~1452)는 74년 동안의 관직 생활 중 18년간 영의정을 재임하면서 국가의 정치·사회·문화 다방면에 걸쳐 기틀을 확립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고려 우왕 말기에 과거에 급제하고 고려 멸망 이후 태조에게 발탁되었으며, 태종 때에는 박석명(朴錫命)의 추천으로 지신사(知申事: 후의 도승지)가 되어 태종의 왕권 강화책에 조력하였다. 세종대에는 신진 관리와 구임 관리의 조화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세종을 장기간 보좌하여 국가 제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묘소의 구성은 봉분 뒤로 별도의 사성(莎城)을 두지 않았다. 이 시기 다른 묘들과 달리 봉분 전면에만 호석을 사용했는데 매우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호석은 장대석을 이용해 쌓았고, 전면을 향해 ‘ㄷ’자형으로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장대석을 쌓아 묘역을 삼단으로 구분하였다. 봉분 앞에 상석(床石)과 향로석(香爐石)을 놓았다. 한단 아래에 사각의 장명등이 놓여있으며 그 좌우에 동자상과 문인석이 각 1쌍씩 설치되었다. 묘비는 장명등 우측에 세워져 있다. 묘비에는 ‘영의정익성공방촌황희지묘(領議政翼城公厖村黃喜之墓) 계배정경부인청주양씨부(繼配貞敬夫人淸州楊氏祔)’라고 기록하였다.
묘역 아래에 있는 원모제(遠慕齊) 앞에 비각이 있다. 비각 안에는 2기의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좌측의 것은 신숙주(申叔舟)가 짓고 안침(安琛)이 썼으나 마모가 심하여 현재에는 판독하기가 어렵다. 우측의 신도비는 1945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묘의 서쪽에 보이는 봉우리는 문종이 신하의 장례를 지켜보았다는 곳이라 하여 ‘어봉(御峯)’이라 불리고, 조문주유적비(弔問駐遺蹟碑)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