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2년(광해군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구(鄭逑)와 이윤우(李潤雨)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 위패를 모셨다. 1690년(숙종 16)에 ‘회연(檜淵)’이라 사액을 받아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74년에 정부의 보조와 지방유림의 협력으로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6칸의 강당,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신문(神門), 외문(外門), 4칸의 숙야재(夙夜齋), 고사(庫舍), 별사(別祠), 비각, 신도비등이 있다.
사우에는 정구와 이윤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토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동재 · 서재는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곳이며, 신도비의 비문은 신흠(申欽)이 정구와 이윤우의 학문 · 덕행 및 공적을 찬양한 글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中丁 : 두 번째 丁日)과 8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4변(籩)4두(豆)이다. 유물로는 용두장(龍頭杖)과 가죽신 · 창의 등 여러 점이 보관되어 있으며, 소장전적은 목판본과 《심경발휘 心經發揮》 외에 수십권이 보관되어 있다. 재산으로는 전답 4,600평, 임야 9,000평, 대지 1,5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