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저작집 ( )

정치·법제
문헌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우상화를 위한 선전물로 항일관계 문건을 모아 엮은 전집. 북한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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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 김일성우상화를 위한 선전물로 항일관계 문건을 모아 엮은 전집. 북한문헌.
편찬/발간 경위

1980년 제6차 조선로동당 전당대회에서 후계자로 확정되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김정일(金正日)은 정권을 장악 할 때까지 후계자로서 나라와 김일성에게 충성을 맹세하였다. 이 작업의 일환으로 김정일은 1979년 4월, 3개년 계획으로 김일성의 문헌을 재정리할 것을 지시하였으며, 그 해 저작집 1권이 출간되었다.

김일성의 70세 생일(1982년 4월 15일)에 김정일이 아버지에게 새로운 저작집을 선물로 증정하려던 것이 목적이었으나, 이 작업은 제때 완성되지 못했다. 그 후 김일성이 80세 되던 1992년까지 38권이 출간되었고, 또 다른 문헌집이자 거질(巨帙)인 『김일성 전집』 1권을 80세 기념으로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는 좀 더 방대한 규모로 김일성이 쓴 글을 집대성해 보겠다는 의도가 있었으나, 이러한 계획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새 문헌을 많이 발굴해야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자료집에 수록되지 않은 연설을 많이 수록하고 있는데, 새로 발굴된 자료는 모두 기억에 의거해 새로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므로 왜곡이 심한 것으로 판단된다.

김일성이 쓴 글을 전부 모아서 그에게 생일 선물로 증정하려 했다는 것은 표면적 편찬 목적이며, 보다 본질적으로는 김정일이 자기 아버지를 격상하여 개인우상화 하려는 정치운동의 목적으로 결행한 것이다.

서지적 사항

1930년부터 1945년까지를 포괄한 1권을 제외하고 2권은 1946년, 3권은 1947년, 4권은 1948년 등 대체로 한 권 당 일년 내지 1년 반, 많게는 22개월을 포괄하고 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까지를 다룬 책이 44권(1992년 12월 14일부터 1994년 7월 6일까지 포괄)으로 1996년에 출간되었다.

내용

『김일성저작집』에는 ‘해방자로서의 소련’에 관한 문구를 모두 삭제하고 김일성의 식민지기 항일투쟁 관련 문건을 처음으로 첨가시킴으로써 김일성 체제의 혁명전통을 확립하고 김일성 우상화의 도구로 이용되었고, 주체사상의 틀에 맞추어 각종 용어와 내용을 수정했다. 단일 체제의 저작집류에 최초로 수록된 항일시기의 문헌은 249쪽으로 1권 전체를 채우지는 못하였다. 1930년 6월 30일(18세) 만주 카륜 공산주의 청년동맹과 반제국주의 청년동맹 간부회의에서의 연설인 “조선혁명의 진로”부터 1943년 9월 조선인민혁명군에게 한 “조선혁명가는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는 연설문까지 19편의 비교적 긴 글들이 그것이다.

이전에도 항일혁명기의 저작이 출간된 적은 있었다. 1968년 조선로동당출판사에서『항일무장투쟁시기의 김일성동지의 교시』라는 책이 출간되었으나, 발표 당시의 원문이 아닌 주요부분의 발췌와 해설을 덧붙인 형태였다.

식민지기 문헌들은 1970년대 초반에 들어와서 간략한 소책자 형태로 처음 공개되기 시작했다. 1937년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내 기관지 『서광(曙光)』에 처음 발표되었다고 주장되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가 1971년 발간된 데 이어 1943년의 “조선혁명가들은 조선을 잘 알아야 한다”가 1971년에, 1931년의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 데 대하여”가 1972년에, 그리고 1930년에 썼다고 주장되는 “조선혁명의 진로”가 1978년에 재발간되었다. 이들 해방 전의 문헌들은 김일성의 회고에 의해 사후적으로 재편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당시 김일성의 여러 연설과 보고서들이 책으로 편찬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게 남아 있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대숙 교수는 1940년대 후반 저작의 문체가 그 시대 것보다는 1970년대의 그것과 가깝다고 주장하면서『김일성저작선집』과『김일성저작집』에 수록된 초기 저작은 후대에 쓰여진 것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1930년대와 1940년대 초반의 저작도 문체가 현대적이므로 아마 후대에 쓰여진 것이거나 아니면 문체를 현대화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저작들은 발표 당시의 원문 그대로는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날조라고 보는 데에도 문제는 없는 것은 아니다. 메모 형태로만 남아있던 기록을 관련자들의 증언과 기억을 종합해 세밀한 복원과 윤문을 거쳐 세상에 공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김일성저작집』 발간사에서는 “이미 발표된 로작들과 함께 지금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로작들을 많이 수록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저작집에 수록된 로작들을 다시 교열하시었다”고 나오므로 김일성 저작류의 편찬 당국자도 가필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김일성이 해방 후에 썼다는 1945년 8월부터 그해 12월까지 집필했다는 연설문 약 30편을 1970년대에 새로 조작해 내서 저작집에 처음 소개했다. 이런 글들은 그 내용으로 보나 역사적 사실로 보나 맞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김일성이 1945년 9월에 귀국하였는데 그가 1945년 8월 20일에 벌서 정치·군사 간부들에게 했다는 연설문이 있다. 그 내용으로 보아도 김일성 선집 초판에 나오는 글과는 너무 대조적이고 맞지 않는 말이 많다.

김일성 저작집에 실려 있는 광복 직후 몇 개월간의 문헌 중 김일성 선집 초판에 실려 있는 글은 단 하나 밖에 없다. 이것은 1945년 12월 17일 김일성이 조선공산당 북조선 북국 제3차 확대회의에서 한 보고인데 김일성이 광복 후 북한에 들어와서 제일 먼저 쓴 글로 추정된다. 이 글도 저작집에 실릴 때까지는 여러 번 교정하고 삭제 가필하였다. 즉 『김일성선집』 초판의 문헌이 원문에 가깝다면, 이것은 『김일성선집』 재판에서 수정되었고, 『김일성저작선집』에서 또 다시 수정되었다. 따라서 『김일성저작집』에 실려 있는 글은 서너 번 수정한 것이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간행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1∼6권을 다시 조판해 1996년(45, 46권)과 1997년(47∼50권)에 재출간했다. 50권을 맞추어 완간한 셈이다. 44권까지는 모두 1,405편의 글을 수록했고, 22,976쪽으로 연설문, 담화문, 대담기록, 보고문, 발표문, 서한, 논문 등 다양하다. 이 중 약 300여 편의 문헌은 『김일성선집』이나 『김일성저작선집』에 수록되었던 문헌들이고, 1,100여 편의 문헌이 처음 소개되었다. 『김일성저작선집』에 이어 김정일이 깊숙이 관여했는데,『조선중앙년감』 1986년판 245쪽에는 “친애하는 김정일 동지께서는 로작출판선전을 당 사상전선의 첫자리에 놓고 현행로작들을 단행본으로 제 때에 편찬 출판하면서 동시에 모든 력사적 로작들을 체계적으로, 전반적으로 새롭게 발굴하여 편찬 출판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었다. 친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저작선집』편찬에 이어 『김일성저작집』을 낸 데 대하여 몸소 발기하시고 저작집 출판에 나서는 모든 문제를 풀어주시었다”라는 구절이 인용되어 있다.

새로 들어간 것은 주로 1980년대에 새로 제작한 문헌들이고 김일성 수령 상을 확립하고, 그의 우상화를 강화하며, 그의 백전백승의 지도력을 입증하려는 문헌이다. 따라서 김일성 저작집의 역사적 가치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다른 선집이나 저작선집에서 옮겨 실은 문헌은 수정 아니면 가필한 것이고 첨가한 것은 김일성의 글인지 검증해야 한다. 다만 이런 글들은 그가 그 당시 무엇을 하고 있었나 하는 것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참고가 될 수는 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서는 김일성을 해방자라고 하고, 소련이 해방 당시에 한 공헌을 삭제하였다. 또한 중국이 6·25전쟁 때에 준 도움에 대해서도 언급을 피하고 우리민족의 성스러운 민족해방운동에서 김일성 장군이 승리했다고 한다. 북한은 모든 정치·경제·사상 면에서 주체를 확립하고 김일성을 수령으로 모시고 자주 조선을 세워 나가야한다는 것을 주장하면서 이 저작집을 그러한 선전 선동운동의 목적으로 사용하려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문헌집으로서의 가치는 떨어진다.

참고문헌

『현대(現代) 북한(北韓)의 지도자(指導者):김일성(金日成)과 김정일(金正日)』(서대숙, 을유문화사, 2000)
『김일성(金日成)동지(同志) 회고록(回顧錄) 세기(世紀)와 더불어 (계승본) 7∼8』(조선로동당 출판사, 1996∼1998년)
『북한(北韓)의 주요원전(主要原典) 색인목록(索引目錄) 1: 김일성저작집(金日成著作集)』(서울: 통일원, 1994)
『회고록(回顧錄) 세기(世紀)와 더불어 1∼6』(김일성, 조선로동당출판사, 1992∼1995년)
『조선중앙연감(朝鮮中央年鑑)』(1986년)
『김일성저작집(金日成著作集) 수정내용(修正內容) 분석(分析)』(이창하, 국토통일원, 1982)
『김일성저작집(金日成著作集) 50책』(조선로동당출판사, 1979∼1998)
『김일성저작선집(金日成著作選集) 10책』(조선로동당출판사, 1967∼1993)
『김일성선집(金日成選集) 제1권』(조선로동당출판사, 1954)
「김일성연구자료집」(이완범 편,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2000)
집필자
이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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