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공산 ()

근대사
문헌
1920년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 선전과에서 사회주의사상의 광범위한 보급을 위하여 창간한 회보. 기관지.
정의
1920년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 선전과에서 사회주의사상의 광범위한 보급을 위하여 창간한 회보. 기관지.
서지적 사항

『동아공산』은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가 설립된 지 한달 남짓 뒤인 1920년 8월 14일에 발간되었다. 당초 ‘주간신문’을 표방하였으나 인쇄기구 등의 부족으로 발행주기는 불규칙했다. 최종호인 제14호가 1921년 5월 10일자로 발행되는 것으로 보아 9개월 대략 3주에 한번 꼴로 발간했음을 알 수 있다. 매호마다 2천부씩 발행하였고 신문의 배포선은 시베리아 한인사회였다. 창간호가 시베리아와 러시아에 소재하는 35개 도시로 발송되었다고 하는데, 크라스노야르스크를 포함하여 대다수는 이르쿠츠크를 출발하여 모스크바에 이르는 철도 연선지대에 자리 잡은 도시들이었고, 이외에 아스트라한 등 남러시아 볼가강변에 위치한 도시도 있었는데, 이 도시들에는 크고 작은 한인사회가 형성되어 있었다.

『동아공산』의 발행자는 전로한인공산당 중앙총회 선전과였다. 이 부서는 조직과와 연락교통과를 포함하여 중앙총회 내부에 편제된 3개 집행부서 가운데 규모와 비중이 가장 컸다. 한규선(韓奎善, 과장), 이봉춘, 박창래(朴昌來), 김동한(金東漢), 박희일, 한봉익(韓鳳翼), 김마리아, 한세묜, 김철훈(金哲勳) 등이 선전과 직원으로 『동아공산』의 발행에 관여했다. 이 신문은 무상으로 배포되었고 발간자금은 창간호부터 제10호까지는 ‘러시아공산당 시베리아총국 동양국’에서, 제11호부터 제14호까지는 ‘코민테른 극동비서부’에서 나왔다.

내용

『동아공산』의 지면은 논설, 기고문, 연재물, 보도기사, 광고, 삽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호의 첫 기사는 논설과 연재물이 반씩이고 논설 가운데 절반은 사회주의이념과 조직론에 관한 계몽적 내용을 채워졌다. 즉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정책의 제시보다 사회주의사상의 광범위한 보급을 중시했다. 연재물들도 「공산주의자란 어떤 사람인가」(미닌),「당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과 공산주의자」(지노비에프) 등 사회주의 이념과 공산당 조직론에 대한 번역물이 대부분이었다. 보도기사는 「외보」, 「원동」, 「시비리」, 「유로빠로시아」, 「한국 내지」 등으로 나뉘었는데 보도기사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러시아 관련기사였다. 이것은 혁명과 내란이 소용돌이 속에서 격동하는 러시아의 내부 정세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했음을 알려준다. 전로한인공산당과 그 관련단체에 관한 소식도 상세하다. 보도기사의 대부분은 『크라스노예 브레먀』(러시아),『동경매일신보』(일본),『노스차이나스타』(중국) 등 다른 매체로부터 전재한 것들이 다수이지만, 이르쿠츠크를 비롯하여 시베리아 한인사회의 동정을 다룬 기사들은 직접 작성한 것들이었다. 이밖에 당이 설립한 무관학교나 정치학교 신입생의 모집을 알리는 사고(社告) 등 공적인 성격의 광고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삽화도 많이 게재되었다.

의의와 평가

『동아공산』은 강력하게 국제주의를 표방했다. 이와 관련하여 창간호는 첫째 “빈천자의 새로운 눈과 귀가 되기로” 한다는 것, 둘째, “동양의 제국주의자와 재정세력가들”을 박멸하기 위해 ‘동양 노동혁명군’을 불러 일으키려고 한다는 것, 셋째, 빈천자의 통일과 단결을 꾀한다는 것, 넷째, 빈천자의 능력을 높이기 위해 “새 정책과 새 학술을 소개”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빈천자는 노동계급을 말하는 것으로, 동양 노동계급의 혁명운동을 위해 노동자·농민을 각성시키는 것이 『동아공산』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국제주의적 연대감은 세계혁명론과 닿아 있는 것인데 『동아공산』의 간행자들은 국제주의적 관념을 민족주의와 대립되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들은 결코 한국해방의 과제를 부인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를 폐기해야 하는 관념으로 간주하였는데, 이러한 인식은 같은 시기에 코민테른 제2회 대회에서 채택된 식민지문제에 대한 테제와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고는 항일민족운동 대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는 물론, 한인사회당에 대해서까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게 만들었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한국 민족해방운동에 참가하는 세력일지라도 노동자적 요소가 아니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은 레닌이 이른바 좌익 소아병이라고 불렀던 사고방식의 소유자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동아공산』 신문 연구」,『사림(史林)』제27호 (임경석, 수선사학회, 2007)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임경석, 역사비평사, 2003)
집필자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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