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친우회 ()

근대사
단체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열망을 전파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조직된 친한 외국인 단체.
정의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나타난 한국인의 독립열망을 전파하고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기 위해 조직된 친한 외국인 단체.
설립목적
  1. 기독교와 자유독립국가를 위해 고통받고 있는 한국민족에게 미국민의 동정과 도덕적인 지원을 보낸다.

  2. 한국민족이 지금까지 받아 온 일제의 학정과 부당한 대우가 가능한 더 이상 재발되지 않도록 미국민의 도덕적 영향력과 호의적인 조정을 다한다.

  3. 한국에 관한 진실한 정보를 미국민들에게 알린다.

  4. 세계 모든 민족과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영원한 평화를 증진시키며 하나님의 법이 온 세계에 수립되도록 돕는다.

연원 및 변천

한국친우회의 결성을 처음 제안한 사람은 서재필이었다. 그는 필라델피아한인자유대회(제1차 한인회의)에서 친한 미국인들의 단체설립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뒤, 대한인국민회 북미총회장 백일규(白一圭)에게 보낸 1919년 4월 29일자 편지에서 친한 미국인단체를 조직하여 한국에 대한 동정여론을 일으키며, 독립을 위한 미국정부의 압력단체로 활용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서재필은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톰킨스(F.W.Tomkins) 목사·오버린대학 사회학과 교수 밀러(H.A.Miller)·International News Service 기자 베네딕트(G.Benedict) 등과 함께 한국친우회 결성에 적극 나섰다. 서재필이 톰킨스 목사와 함께 1919년 5월 2일필라델피아시티클럽에서 저명인사 22명을 초청하여, 발기모임을 가짐으로써 본격화되었다. 발기위원으로는 톰킨스 목사·서재필·베네딕트 기자가 선임되었다.

1919년 5월 15일 이들 발기위원들이 중심이 되어 리딩(Reading)시 라자(Rajah)극장에서 대규모 대중집회를 개최한 후, 5월 16일필라델피아에서 정식 결성되었다. 취지문에 따르면 한국친우회는 극동에 있는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지원을 위해 미국민의 여론 조성이 무엇보다도 필요하지만, 이는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와 인도주의 측면에서 도덕적 의무를 다하기 위함이지, 한·중·일의 정치적 문제에 간섭하고자 함이 아니라 하여 인도적 차원의 민간단체임을 밝혔다. 한국친우회의 결성은 3·1운동으로 한국의 실정을 국제적인 조직망을 통해 효과적으로 선전함으로써, 한국의 독립을 위한 친한여론을 일으키는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1922년 2월 초 워싱턴회의 종결 이후 서재필이 모든 활동을 중지하기로 하면서, 한국친우회는 침체에 빠졌다. 그러나 근본적인 침체의 원인은 3·1운동을 이용한 선전활동이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 내에서 선전재료로서의 가치가 줄어든 점, 워싱턴회의에서 미국정부가 현상유지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을 자극할 수 있는 한국문제에 무성의로 일관한 점, 워싱턴회의 이후 세계열강들의 질서가 일시적인 안정기로 돌아섬으로써, 친우회 활동이 더 이상 미국민의 호응을 얻기가 힘들어진 점 등이었다.

기능과 역할

그러나 서재필은 이 조직이 정치적인 성격을 띨 것임을 예고하였다. 즉 한국친우회가 성공하여 100만 이상의 회원을 얻으면, 사람의 힘과 금전의 힘을 아울러 얻어 우리가 원하는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한국독립을 위한 정치적 운동까지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친우회는 필라델피아한국통신부와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협력하였다. 그러나 필라델피아한국통신부나 구미위원부 등으로부터 어떠한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회비 수입과 의연금에 의해 운영되었기 때문에, 독립된 자치기관의 성격을 유지하였다. 1921년까지 미국 각지의 21개소와 영국과 프랑스 등 해외에 2개소가 조직되어, 총 25,000여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의의와 평가

한국친우회의 결성과 활동에는 몇 가지 특징이 발견된다. 첫째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인도적이고 비정치적인 시민단체로 출발한 친우회가 한국문제에 관한 정치적인 압력단체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각 지역에서 친우회를 결성할 때 결의문에도 나타나고 있다. 둘째 한국친우회 결성이 미국의 중부와 동부지역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선전활동이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한국통신부와 친우회 본부가 서재필이 있는 미 동부지역인 필라델피아에 있었던 사실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셋째 친우회의 결성이 주로 대중집회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대중집회를 열기 위해서는 장소의 선정이나 진행 절차, 소요비용·인원동원 등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친우회가 이러한 방법을 통해 결성되고 있는 것은 미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호응이 컸다는 점을 의미한다.

참고문헌

『신한민보』
『재미한인오십년사』(김원용, 캘리포니아, 1959)
「서재필의 독립운동 연구(1919~1922)」(홍선표,『한국독립운동사연구』7,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1993)
KOREA REVIEW
집필자
이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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