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1895년에 경상도 각 진에서 작성한 진지(鎭誌)를 의정부에서 모아 만든 지리지로, 정확한 편찬과 발간 경위는 알 수 없다.
3책이고 필사본이다. 세로는 28.8㎝이고, 가로는 18.1㎝이다. 이 책의 원본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규 12183)에 소장되어 있다. 3책의 표지명은 『진지부사례(鎭誌附事例)』이며, 각 책에 수록된 진지명이 함께 표기되었다. 영인본인 『국역 영남진지』는 부산광역시사 편찬위원회에서 31개 진 가운데 일부에 해당하는 ‘절영진지(絶影鎭誌), 다대진지(多大鎭誌), 다대진사례(多大鎭事例)·부산진지(釜山鎭誌)’를 발간한 것이다.
『영남진지』는 1894년 11월~1895년 1월에 경상도의 군사 거점 지역인 31개 각 진보에서 편찬한 진지를 의정부에서 모아 편찬한 책이다. 이 책은 동래의 부산진과 적량(赤梁)·절영(絶影)·서생(西生)·가덕(加德)·옥포(玉浦)·다대(多大)·부산(釜山)·구산(龜山)[이상 제1책], 가산(架山)·금도(金島)·독용(禿用)·평산포(平山浦)·동래금정산성(東萊金井山城)·장목포(長木浦)·조령(鳥嶺)·인동천생산성(仁同天生山城)·김해부분산(金海府盆山)·가배량(加背梁)·당포(唐浦)·남촌(南村)·미조항(彌助項)·삼간(三干)·제포(薺浦)·구소비포(舊所非浦)·율포(栗浦)[이상 제2책], 사량(蛇梁)·조라(助羅)·지세포(知世浦)·영등(永登)·천성보(天城堡)·안골(安骨)[이상 제3책] 등 영남 31개 진의 사례(事例)와 진지로 이루어졌다. 기본적인 내용은 군사 재정과 관련되었고, 그 내용은 다대진과 부산진을 제외하고 소략하다.
「절영진지(絶影鎭誌)」는 사례를 덧붙인 형식의 등본(謄本) 성책으로 내용이 소략하며 군제와 관련된 진지와 재정운영과 관련된 사례, 두 부분으로 크게 구성되었다. 「다대진지(多大鎭誌)」는 강계·건치연혁·관직·관할(管轄)·성지(城池)·봉료(俸料)·목장·창고·산천·풍속·형승(形勝)·호구·전결(田結, 정해년)·방리(坊里)·도로·정천(井泉)·봉수·단묘(壇廟)·봉산(封山)·선척(船隻)·어염(漁鹽)·장시(場市)·도서(島嶼)·토산(土産)·해착(海錯)·고적·명환(名宦)·제영(題詠) 등으로 이루어졌고 끝에 윤시동(尹蓍東)이 1768년(영조 44) 5월에 쓴 ‘제진지후(題鎭誌後)’가 있다. 「다대진지」는 뒷부분에 부록 형식으로, 「다대진사례(多大鎭事例)」가 수록되었다. 「다대진지」는 다대진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이 기록되었고, 「다대진사례」에는 다대진의 이방·호방·병방 별로의 조직과 목장 운영 등과 같은 재정 관련 내용이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특히 「목소(牧所)」조의 내용이 상세하여 이 시기의 목장 운영에 대해 알 수 있다.
「부산진지(釜山鎭誌)」는 연혁·진명(鎭名)·읍명·관직·순영·진보(鎭堡)·산천·방리·호구·폭원(幅圓)·군액·군기(軍器)·창고·환곡전선(還穀戰船)·봉수·봉산·성첩(城堞)·자성(子城)·성문·지당(池塘)·방포(防布)·결전(結錢)·급대(給代)·별포(別布)·관름(官廩)·관사(官舍)·누대(樓臺)·형승(形勝)·도서제언(島嶼堤堰)·풍속·의열·비단(碑壇)·고적·토산·어염·장시·정도(程道)·교린(交隣)의 항목으로 구성되었다. 타 진지에서는 볼 수 없는 서문이 진지 첫 부분에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읍지의 형식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항목별 개념에 대한 설명과 부산진의 실제 사정 등을 수록하였다. 38개 항목을 정의함에 있어서도 중국의 경우와 우리나라의 실제를 언급하는 점 또한 특이하다. 반면 「동래금정산성사례(東萊金井山城事例)」에는 사례만 있고 상납질(上納秩)·지방질(支放秩)·교리도예총액(校吏徒隸總額) 등으로만 이루어져 매우 소략하다.
1895년(고종 32) 1월까지 영남 각 진에서 작성한 진지를 의정부에서 모았다는 것은, 1894년 근대식 관제 개혁에 따라 1895년 7월, 수영 이하 모든 군영제도가 폐지되기 직전에 작성된 진지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선 후기 영남 지방의 관방체제를 비롯하여 재정운영 사정 등 해당 지역의 전반적인 사항을 전해주는 기초적인 자료로서 의의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