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자위대 ()

정치·법제
단체
해방 직후 북한의 조만식 등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국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자생적인 조직한 무장단체이자 자위대(自衛隊).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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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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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해방 직후 북한의 조만식 등 민족주의 계열 인사들이 국내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자생적인 조직한 무장단체이자 자위대(自衛隊).
개설

해방 직후 북한에는 치안유지를 자처하면서 자생적인 무장단체들이 조직되었다. 즉, 민족주의 계열의 ‘자위대’(自衛隊), 국내파 공산주의자들이 조직한 ‘치안대’(治安隊), 소련군 진주 후 각 도청 소재지 중심으로 결성 된 ‘적위대’(赤衛隊) 등 3계파의 무장 세력이 난립하면서 자파의 세력 확장과 주도권 쟁탈을 벌여나갔다. 각 지역의 무장력은 해당 지역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반영하고 있었다.

설립목적

해방 후 일본군이 철수하고 소련군이 입북하기 이전까지 북한내 민족주의 인사들은 치안공백 상태를 극복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임시로 군사조직을 편성하였다. 소련 군정이 체제를 갖추기 전까지는 조만식(曺晩植)을 비롯한 민족주의자들이 자위대를 조직하였고, 현준혁(玄俊赫)을 비롯한 국내 공산주의자들도 소련군에 호응하여 공산당의 조직 활동을 활발히 전개하면서 치안대를 조직하였다. 민족진영의 활동은 해방 초기부터 좌익계인 치안대 세력과 충돌하게 되었고 소련군정의 직접적인 방해 공작에 부딪치게 되었다. 무장단체들은 서로 대립하여 주도권 쟁탈을 야기하는 등 정국은 극도로 혼란해졌다.

기능과 역할

소련 군정은 자생 무장단체의 활동을 억제하기 시작하였으며, 김일성(金日成)이 소련에서 각 도청 소재지마다 적위대를 편성하여 무장조직을 확대시키면서 소련군정을 대리하여 경찰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들은 소련군 정치사령부의 지령에 따라 북한 전역에서 경찰관서를 접수하여 일본 경찰 무기를 소지하고, 각 도·시·군·면·리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우익계의 활동에 압력을 가하여 짧은 기간 안에 북한 전역을 장악하였다. 적위대는 소련군 정치사령부의 지시아래 소련파 공산세력을 확대하자 모든 민족주의 우익세력은 약화되었다.

현황

국내파 세력은 1945년 9월 28일현준혁이 적위대원에게 암살되면서 급격히 약화되었다. 소련 정치사령부의 조종과 국내파 공산당 지도자 장시우(張時雨)의 사주를 받은 적위대원에 의해 피살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공산당을 조직하는 한편 민족진영과 합작하여 조만식조만식을 지도자로 추대하였고 자신은 배후로 물러나 있는 편이었다. 1945년 10월 12일『소련 제25군사령관 명령서』에 의하여 치안대, 자위대, 적위대가 모두 해산되고 보안대가 창설되었다.

의의와 평가

김일성과 연결된 국내파들은 현준혁 살해를 모의하였고 당시 평안남도 사법국장 장시우 수하의 적위대원으로 하여금 그를 암살하도록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45년 9월 28일 그는 조만식과 함께 소련 점령군 정치사령관인 로마넨코(Andrei A. Romanenko) 소장을 만나고 같은 차로 돌아오는 도중, 평양 시청 앞 백주 대로 상에서 적위대에 의해 저격당하여 조만식의 가슴에 안긴 채 목숨을 거두었다. 이로써 조만식 계열의 자위대와 국내파 공산주의 계열의 치안대는 김일성과 함께 입북한 소련파에 의해 약화되고 말았다.

참고문헌

『북한인민군대사』(장준익, 한국발전연구원, 1991)
『6.25전쟁사 제1권』(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2004)
『남북한의 창군』(한용원, 오름, 2008)
집필자
양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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