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법주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는 이 삼신불은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왼쪽은 아미타불, 오른쪽은 석가불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불상 연기문(緣起文)에 의해 1626년(인조 4)에 현진(玄眞), 청헌(淸憲), 연묵(衍黙), 양묵(懹黙) 등이 조성하였고 1747년(영조 23)에 개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이 조성된 후 1630년(인조 8) 중관(中觀)이 쓴 「속리산대법주사대웅대광명전불상기(俗離山大法住寺大雄大光明殿佛相記)」가 법주사에 전한다.
중앙의 비로자나불은 오른손으로 왼손을 감싸쥔 형태의 지권인(智拳印)을 취하고 있는데, 조선 후기 비로자나불상은 대부분 이러한 변형된 지권인을 취하고 있다. 왼쪽의 불상은 오른손을 무릎 위쪽에서 손바닥을 위로 향하고 있고 왼손은 위로 들어 각기 엄지와 중지를 맞댄 설법인(說法印)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아미타불의 하품중생인의 좌우가 바뀐 것 같은 모습이기도 하고, 조선 후기 삼세불의 약사불상이 취하는 수인과 같지만 지물(持物)을 들고 있지는 않다. 오른쪽의 불상은 오른손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짓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한 채 무릎 위에 놓고 있다. 조선 후기의 삼신불 중 노사나불은 대부분 보관을 쓰고 양손을 어깨 좌우로 벌린 보살형비로자나불상으로 표현되는데 여기서는 여래형으로 표현되었다. 얼굴과 신체 모두 사각형적인 장대한 모습이며 대의는 통견(通肩)을 취하고 있다.
17세기 전반기부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쟁을 거친 후 그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많은 불사(佛事)가 전개되어 전국적으로 수많은 사찰이 중창 또는 건립되고 불상을 비롯한 불교 유산이 새로이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제작된 불상은 주로 목조 불상과 소조 불상이 주류를 이루며, 대부분 방형의 장중한 형태를 이루며 신체의 굴곡이 거의 없는 평면적인 조형을 이룬다. 법주사 삼불은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며 연대가 확실하여 조선 후기 불교조각의 기준이 되는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조형성이 탄탄한 불상으로 임진왜란 후의 새로운 조형을 보여주고 있어 이 시기 불상 연구에 기준작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