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단 바탕에 채색. 세로 240㎝, 가로 172㎝. 화기에 의해 1730년(영조 6)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음경』에 의하면, 관음보살은 남인도의 바닷가에 면한 보타락산(補陀落山)에 거주한다. 여기에 많은 성현이 살고 광명이 넘치며 나무에 꽃이 끊임없이 피어 늘 향기가 난다고 한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金剛寶石) 위에 관음이 결가부좌하고 있다. 관음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지시에 의하여 구도의 여행을 계속하는 선재동자(善財童子 : 구도(求道)의 보살 이름)의 방문을 받는다고 한다. 이 내용은 특히 고려시대에 많이 제작된 수월관음도 도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다.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이러한 수월관음도의 도상을 충실히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즉 화면 중앙에는 정면관(正面觀 : 앞에서 바라본 모습)을 취한 관음보살이 큰 원형 광배에 싸여 암벽 위에 반가좌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수월관음도에서 관음은 흔히 측면관(側面觀 : 옆에서 바라본 모습)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이에 반해 조선시대의 수월관음도는 거의가 정면관의 모습을 보인다.
관음보살은 화불(化佛)이 새겨지고 수많은 구슬로 장식된 매우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장식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여기서부터 또 천의(天衣)를 따라 발아래까지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이 길게 늘어져 있어 장식적인 의도가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가슴에서부터 대좌까지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천의의 복잡한 흐름에서도 드러난다. 천의 표현에서는 도식적인 기법이 드러나 있다.
관음보살 아래에는 청문(聽聞)하는 선재동자와 여의주를 받쳐 든 남녀 인물상[용왕]이 배치되었다. 화면의 왼쪽 암벽 끝에 버들개지를 꽂은 정병(淨甁)과 파랑새[청조(靑鳥)]가 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대나무 숲이 그려져 있어 관음의 자세만 다를 뿐 정통적인 수월관음도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인다. 또한 밝은 진홍색과 녹색 등 화사한 색조 구사와 장식적인 경향은 18세기 초기의 불화 양식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