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존불 높이 11.82m, 좌우협시보살상 8.79m. ≪금산사사적기 金山寺事蹟記≫에 의하면 미륵전에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 진표(眞表)에 의하여 시주(始鑄)되어서 766년(혜공왕 2년)에 완성된 불상이 있었으나, 정유재란의 병화(兵火)로 1597년(선조 30년)에 불타 버렸다고 한다.
현재의 이 미륵삼존상은 1627년(인조 5년) 수문(守文)에 의하여 조성된 소조상인데, 이 중 본존불은 1934년 3월의 실화로 소실된 것을 다시 중수하여 1938년 9월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본존불상은 오른손을 들어 외장(外掌)하고 왼손은 앞으로 내밀어 손가락을 조금 오므린 모습이다. 아마도 시무외(施無畏) 여원인(與願印)의 모습을 변형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20세기 초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원만한 상호(相好)를 갖추었고, 거대한 체구이나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이루어진 불상이다. 당당한 가슴과 이를 덮은 통견(通肩)의 법의는 어깨에서 배를 거치며 유연한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과 양다리 위에 간략한 옷주름 및 양팔에 걸쳐져 아래로 흘러내리며 이루는 옷주름 표현의 기본적인 양식은 통일신라시대(8세기 이후) 불상의 양식과 유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이 불상이 1627년에 제작된 본존상과 똑같이 만들어졌고, 또 그것이 불타기 전까지 있었던 신라 불상을 범본으로 삼아 제작되었다면 신라 불상의 양식이 어느 정도는 계승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더구나 현재까지 불단 아래에 남아 있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청동대좌는 어느 정도 이러한 추론을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좌우의 협시보살상은 두 손의 위치만 반대일 뿐 모두 같은 모습이다. 얼굴은 신체에 비해 다소 큰 편이고, 풍만하지만 네모난 형태이다. 머리 위에는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이러한 얼굴 모습이나 보관의 형태는 조선 후기 보살상의 보편적인 표현 양식이다.
어깨를 덮고 팔을 돌아 내린 천의(天衣)와 배와 다리 위로 U자형의 곡선을 그리며 흘러내린 옷주름은 화려하지만 무척이나 완만하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가슴 위의 천의 양쪽에는 보주형(寶珠形)의 장식이 표현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 불화의 보살상에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식과 유사한 형태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보이는 본존불과 조선 후기 보살상의 양식을 갖춘 협시보살로 이루어진 작품으로서, 제작 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흔하지 않은 거대한 소조불의 예라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