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불화는 고려후기에 조성된 불화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과 문수(文殊)·보현보살(普賢菩薩)의 석가삼존(釋迦三尊)과 석가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불제자인 십육나한(十六羅漢)을 한 폭에 조성한 불화이다.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Leeum)에 소장되어 있다.
세로 90.0㎝, 가로 44.5㎝의 크기에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렸다.
화면의 상단부분에는 천개(天蓋)가 있고 그 아래에 큰 원형 광배(光背) 안에 본존불(本尊佛과) 협시보살(脇侍菩薩)의 삼존(三尊)이 있고 그 아래로 구름을 탄 16명의 나한이 지그재그로 배치되었다.
본존과 협시보살은 수인과 지물만으로는 그 존명(尊名)을 알 수 없으나 나한(羅漢)이 모두 석가모니의 제자가 되므로 주존의 도상(圖像)은 석가모니불과 문수·보현의 석가삼존(釋迦三尊)으로 파악된다. 석가삼존과 십육나한을 한 화폭으로 그린 고려불화는 현재 이 불화 외에 일본 네즈(根津)미술관에 소장된 석가삼존십육나한도(釋迦三尊十六羅漢圖)가 있다. 현전하는 160점에 달하는 고려불화가운데 석가삼존십육나한도와 같은 도상(圖像)은 네즈소장본과 리움소장본의 2점이므로 도상의 현존 사례가 적은 편이다.
16나한은 석가여래 열반 후 미륵불(彌勒佛)이 나타나기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도록 위임받은 분들이다. 응진전(應眞殿)은 바로 16나한을 봉안하기위한 전각이다. 전각 안에는 중앙에 석가삼존을 모시고 그 옆으로 16존자를 나누어 배치하고 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경우 16나한도의 현존 사례가 적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으로 봉안되었는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러나 고려시대에는 나한신앙이 왕실을 중심으로 크게 성행하였으며 현존하는 고려불화가운데 오백나한(五百羅漢)의 도상을 한 폭씩에 남기고 있는 작품이 10점 가까이 남아 있어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에서 전하는 오백나한상이 봉안된 나한당(羅漢堂)에 위와 같은 불화가 걸렸음을 시사하고 있다.
화면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상단부에는 석가삼존과 그 아래 엎드린 세 명의 나한들이 있고 그 아래 대각선으로 일군의 나한이, 그리고 그 대각선상으로 또 한 무리의 나한들이 배치되었다. 네즈미술관본에 비해서 리움소장본 불화가 화면이 어둡지만 두 본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것은 도상을 배치한 구성형식과 도상이 유사함을 살필 수 있어 동일한 초본을 사용하였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인물의 표현법, 필선, 색채, 문양 등 양식적 특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리움소장본 보다 네즈미술관 소장본이 필선이 더 깔끔하고 인물표현도 활달하며 문양 표현 역시 명료하다.
화면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분위기로 주(朱, 빨강)와 녹색이 주조색으로 보인다. 금니(金泥)를 사용하여 화면의 주요한 부분을 설채했는데 특히 본존의 육신부(肉身部)인 얼굴과 손 이외에도 광배(光背), 발(鉢,) 경상자(經箱子), 손향로, 금강령(金剛鈴) 등에도 금니가 사용되었다. 화면이 너무 어두워, 구름이나 동적인 구성에도 불구하고 침잠된 느낌을 준다.
이 불화는 일본 네즈미술관 소장 석가삼존십육나한도와 함께 고려시대 석가삼존십육나한도로는 사례가 적은 귀중한 불화로서 독창적인 도상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한 불화 내에 묘사된 나한이 들고 있는 지물(持物)인 발(鉢,) 경상자(經箱子), 손향로 등에서 고려시대 금속공예와도 비교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