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윤 위성공신교서 및 관련 유물 ( )

출판
문헌
문화재
1613년 무신 이성윤을 위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보물(2006년 12월 29일 지정)
소재지
인천광역시 부평구
정의
1613년 무신 이성윤을 위성공신 2등에 책록한 교서. 공신교서.
개설

이성윤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성종의 4대손이다. 임진왜란 때 선전관으로 세자인 광해군을 따라 공을 세워 1613년(광해군 5) 위성공신(衛聖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이 유물은 교서 1점, 교지 1점, 호패 16점, 아홀(牙笏) 1점으로, 2006년 12월 29일 보물로 지정되어, 인천광역시 남구 거주 후손이 보관하고 있다.

내용

교서는 세로 38.7㎝, 가로 311.5㎝로,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호종하는 데 공을 세운 금산군(錦山君)이성윤에게 광해군 5년 3월에 내린 교서이다. 이 교서는 형태를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으며 뒷면에는 제진자(製進者) 및 서사자(書寫者)가 밝혀져 있어 교서의 양식과 문체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함께 보관된 교지는 1669년(현종 10) 8월 24일에 이성윤에게 흥록대부(興祿大夫)로 올려주고 충정(忠貞)의 시호를 내리는 증시교지로 『현종실록』에도 기록이 보인다. 크기는 세로 58.6㎝, 가로 87.5㎝이다.

이외에 호패가 전하는데, 한 가문의 호패가 150년간(1677∼1822년)에 걸쳐 16개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며 호패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고위관원이 지니는 아홀은 1점이 있는데, 후손 이징구(李徵龜)나 이태구(李泰龜)가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위성공신은 광해군이 폐위된 후 삭훈되었다. 그 결과 구체적인 내용은 실록을 비롯한 모든 기록에서 삭제되어 자세한 사항이 전하지 않았지만, 본 교서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되었다. 특히, 교서의 형태가 완벽하여 당시의 교서 양식과 문체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함께 보관된 호패도 한 가문에 16개나 남아 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서 호패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정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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