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우룡은 1918년 고향에서 영춘학교(永春學校) 졸업 후 1919년 2월 간도(間島)로 가 신흥무관학교에 다니다가 그해 8월 군자금과 학생 모집을 위해 입국했다. 1920년 7월 의열단원 김상옥(金相玉)의 상해행 여비 조달을 위해 유득신(劉得信)과 경기도평의원 박완상(朴完相)에게 2천원 출금을 요구하는 등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해방 후 그가 속한 국민당이 한국독립당에 흡수된 후 1947년 6월 초 안재홍 등과 반탁노선을 반대하고 자주독립을 위해 미소공위를 지지해야 한다면서 한독당을 탈당했다. 이후 한독당 탈당파가 결성한 신한국민당은 1947년 9월 홍명희의 주도에 힘입어 민주통일당, 민중동맹, 신진당, 건민회 등 4당과 통합, 민주독립당을 결성했고 엄우룡은 선전부장을 맡았다. 1947년 11월 엄우룡은 유엔총회의 한반도문제 결의안 지지 기자회견을 하면서 1948년 1월 민주독립당을 탈당했는데 한국전쟁 때 납북(또는 월북)되었다.
1990년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