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법천문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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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전통적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17세기 이후 전래되기 시작한 서양식 천문도인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가 함께 그려져 있는 복합식 천문도.
정의
조선의 전통적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와 17세기 이후 전래되기 시작한 서양식 천문도인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가 함께 그려져 있는 복합식 천문도.
개설

200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신·구법천문도는 원래 8폭의 한지에 그려져서 병풍으로 제작되었던 것이지만 현재는 해체되어 각 폭으로 남아 있다. 신·구법천문도는 말 그대로 조선의 전통적인 구법천문도(舊法天文圖)인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와 17세기 이후 전래되기 시작한 서양식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인 황도남북총성도(黃道南北總星圖)가 함께 그려져 있는 것을 말한다. 전체 8폭 중에서 앞부분인 맨 오른쪽 3폭에 천상열차분야도가 그려져 있고, 이어진 4폭에는 신법천문도가, 마지막으로 1폭에는 일월오성도(日月五星圖)가 그려져 있다. 18세기 초에 관상감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

서양식의 신법천문도인 황도남북총성도 부분은 다시 각각 2폭의 황도북성도(黃道北星圖)와 황도남성도(黃道南星圖)로 구성되는데, 이는 각각 황도를 기준으로 천구를 반으로 나누고 남북극을 가운데에 두고서 별자리를 그린 것이다. 신법천문도의 위와 아래에는 도설(圖說)이 적혀있으며, ‘黃道南北總星圖(황도남북총성도)’라는 이름이 제5폭과 제6폭에 걸쳐서 새겨져있다. 마지막의 일월오성도 1폭에는 위에서부터 태양과 달이 그려져 있고, 이어서 오행성이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의 순서로 그려져 있다. 이들 오행성에는 전통적인 명칭인 진성(鎭星), 세성(歲星), 형혹(熒惑), 태백(太白), 진성(辰星)이라는 이름이 표기되어 있다.

전통적인 구법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신법천문도인 황도남북총성도 부분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천상열차분야지도에서는 하늘의 별자리를 적도(赤道)를 중심으로 그렸고 천구의 남쪽과 북쪽의 별자리를 하나의 원 속에 모두 그려 놓았다. 이에 반해, 서양식의 신법천문도에서는 하늘의 별자리를 황도(黃道)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으로 나누고 북쪽의 별자리 그림인 황도북성도와 남쪽의 별자리 그림인 황도남성도를 별도의 원으로 그려놓았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신법천문도는 17세기 이후 중국에 들어온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l von Bell)과 쾨글러(Ignatius Koegler)가 제작한 천문도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다.

한편 신·구법천문도의 신법천문도 부분은, 1985년 보물로 지정된 법주사 소장 신법천문도(新法天文圖)와 내용이 유사하다. 다만 이 법주사의 신법천문도에는 오행성의 이름이 보다 근대적 표현인 ‘토성, 목성, 화성, 금성, 수성’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신·구법천문도는 법주사의 신법천문도가 제작된 시기인 1743년(영조 19) 보다 조금 앞선 시기인 1720∼1730년대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다.

현황

현재 신·구법천문도의 제2폭의 윗부분과 제6폭의 아랫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한편 신·구법천문도와 같은 형식의 천문도가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휘플과학사박물관(The Whipple Museum of the History of Science)과 일본의 남만문화관(南蠻文化館)에도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신·구법천문도는 조선의 전통적인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서양식의 신법천문도가 함께 그려져 있는 특이한 유물로서 한국과학사를 대표하는 중요한 과학문화재의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신·구법천문도를 통해 18세기 이후 조선의 정부와 지식인들이 서양으로부터 전래된 새로운 천문학 지식을 수용하였으며, 이를 전통 지식과 비교, 융합하기 위해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영조대 천문도의 제작과 서양 천문도에 대한 수용형태 : 국립민속박물관소장 「신·구법천문도」를 중심으로」(이문현, 『생활문물연구』, 국립민속박물관,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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