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안 동양화에서의 요철법은 서양의 고전미술에서 유래한 입체감의 표현기법이 인도와 서역(西域)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고 믿었다. 즉 서역 출신의 화가 장승요(張僧繇)에게 전칭되어오는 「오성이십팔수도(五星二十八宿圖)」(오사카 시립미술관 소장)를 보면 이전의 중국회화에서 거의 볼 수 없었던 강렬한 음영구사를 볼 수 있어 이것이 중국회화의 요철법의 기원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그 후 발굴된 한대(漢代)의 기원전 2세기 중엽경의 마왕퇴비의(馬王堆飛依)에도 어느 정도의 농담변화에 의한 입체감 표현이 시도된 것이 보이므로 요철법이 반드시 서역에서 전래된 것이라는 견해에 수정을 가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본격적으로 서양화법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16세기 말기부터 서양의 야소회(耶蘇會 Jesuit)선교사들이 중국에 들어온 후 부터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이나 문인화가들은 입체감 표현에 의한 사실주의 그림들을 보고 감탄하는 한 편, 필법(筆法)이 결여된 그림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17세기 말기 내지 18세기 초부터 부연사(赴燕使)들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화법이 초상화, 동물화, 산수화 등 모든 분야에 폭넓게 수용되었다. 즉 초상화와 동물화에서의 사실적(寫實的) 입체감의 표현, 산수화에서 산의 입체감은 물론 거리감의 표현까지도 가능하게 되었다.
현대회화에는 이러한 기초적인 기법에 개의치 않고 이차원의 화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다양한 표현을 시도하고 있지만 요철법은 모든 사실적 회화 기법의 기본 요소이므로 그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될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