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현도 ()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
회화
개념
유교에서 제례용, 교화용, 숭모용으로 역대 성현의 초상을 집성한 인물화. 고성현제왕도 · 역대고현상 · 역대군신상 · 군신도.
이칭
이칭
고성현제왕도, 역대고현상, 역대군신상, 군신도
정의
유교에서 제례용, 교화용, 숭모용으로 역대 성현의 초상을 집성한 인물화. 고성현제왕도 · 역대고현상 · 역대군신상 · 군신도.
개설

삼황오제(三皇五帝)를 비롯한 상고시대의 전설적인 제왕, 공자, 그의 제자 및 명유 등 유교의 역대 성인과 현인의 초상을 집성한 것으로, 유학자들의 제례와 교화, 숭모용으로 제작되었다.

연원 및 변천

감계주의와 숭현사상과 결부되어 중국 한대(漢代)부터 명당(明堂) 등에 성현들이 벽화로 그려지기 시작했으며, 송대에는 유교적 성격이 짙은 초상화집의 형태로 제작되었다. 북송대 이공린(李公麟)의 성현도가 범본으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원․명대에는 수록된 인물이 증가하면서 반신상의 목판본으로도 제작되어 널리 유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과 문묘 등에 봉안하기 위해 공자와 72제자의 화상이 수용되었으며, 조선시대 16세기 초부터 반신상의 목판본 성현도가 국가적인 차원에서 간행되기 시작하였다. 유학자들도 이들 화상을 구하거나 직접 그려 집안에 걸어 놓고 분향․배례하며 숭배하였고, 예물로 서로 교환하기도 하였다. 화원들의 취재에 성현도를 모사하게 하는 등 고대 인물화보로도 활용되었다.

내용

성현도는 제례용, 교화용, 숭모용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제례용 성현도는 문묘나 서원 등에 봉안되며 공자와 72제자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1513년에 이모된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坐圖)」(소수서원 소장)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단상 중앙 정면의 공자상을 중심으로 그 좌우와 하단에 홀을 든 제자들이 종렬로 배열되어 있어 군신의 조례 의식을 연상시킨다.

교화용 성현도는 화첩 형태로 집성되어 있으며, 목판본과 필사본이 있다. 모두 반신상으로 수록되었다. 1854년 전기(田琦)의 밑그림을 양각하여 제작한 『만고제회도상(萬古際會圖像)』(장서각 소장)은 중국의 시조신인 반고(盤古)에서부터 원대까지의 전설적인 제왕과 역사적인 성현들의 초상을 윤곽선으로만 나타낸 백묘풍(白描風) 목판본으로, 각 인물마다 이름과 함께 찬문을 수록하였다. 『역대도상화첩』(개인소장)은 4권으로 이루어진 필사본으로, 반고에서 명대의 호대해(胡大海)까지의 중국 성현에 이어 최치원과 안향, 정몽주, 김시습 등 모두 222명이 채색화로 그려져 있다.

숭모용 성현도는 서재에 걸어 놓거나 서안 위에 두고 경모하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가 그린 기자, 주공, 공자, 안회, 주자 등 다섯 성현의 전신 입상과, 단독 또는 군상으로 묘사된 『12성현화상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서문 등을 통해 추모하기 위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유학자들이 삶의 지표로 따르고 숭배하기 위해 역대 성현들의 초상을 집성한 성현도는 조선시대 유교미술의 대표적인 화목이면서 고대 인물화보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참고문헌

「조선시대 주자 숭모열과 그 이미지의 시각화 양상」(박정애,『대동문화연구』93, 2016)
「역대제왕의 고사를 그린 조선후기 왕실 감계화」(김영욱,『미술사학』28호, 2014)
「조선시대 성현도 연구」(강시정, 이화여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6)
「조선후기 『역대도상』화첩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조인수, 『그림으로 읽는 역사인물사전』, 아주문물학회,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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