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반야바라밀경 ()

금강반야바라밀경 / 발문
금강반야바라밀경 / 발문
불교
문헌
국가유산
인도출신 역경승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당나라 육조 혜능이 협주한 것을 저본으로 고려후기에 간행한 불교경전. 사찰본.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분류
기록유산/전적류/목판본/사찰본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보물(1981년 07월 15일 지정)
소재지
서울특별시 중구 필동로1길 30-0 (장충동2가, 동국대학교)동국대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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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인도출신 역경승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당나라 육조 혜능이 협주한 것을 저본으로 고려후기에 간행한 불교경전. 사찰본.
개설

구마라집(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에 당나라 육조 혜능(六祖 慧能)이 협주(俠註)한 것을 저본으로 고려 말에 간행한 불경이다.

금강경은 2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결집된 이후 동아시아에 널리 유포되어 대승사상을 크게 현양한 경전이다. 결집 당시에 인도에서는 반야운동이 점차 확산되어 지혜의 사상을 결집한 금강경이 성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불자 사이에는 금강경을 매일 수지독송(受持讀誦)하게 되면, 누구나 동일한 공덕을 누릴 수 있다는 믿음이 충만해 있었다. 그리하여 이 경전을 항상 수지하여 독송하고자 하는 수행의식이 강조되어 대중들에 의해 널리 독송되었다. 일반적으로 금강경은 범어로 바즈라체디카 프라즈냐파라미타 수트라(Vajracchedika-parajnaparamita-sutra)로 불리고 있다. 인도에서 성립된 금강경은 그 후 중국에 전래되어, 402년에 구마라집의 한역(漢譯)으로부터 시작하여 703년에 의정(義淨)의 역출(譯出)에 이르기까지 300년 사이에 이른바 6종의 번역본이 완성되었다.

현재 금강경의 6역본 중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있는 번역본은 바로 구마라집에 의해 처음으로 한역된 것이다. 중국에서 한역 금강경이 유포된 이후 양나라 소명태자가 32과분으로 분장(分章)하였고, 당나라 육조 혜능(慧能) 등에 의해 주해가 끊이지 않고 찬술되었다.

편찬/발간 경위

권말에는 1387년에 간행된 『천로해금강경』의 발문과 동일한 발문이 수록되어 있어 간행시기 및 배경에 대해 커다란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아마 후대에 개장하면서 간기가 있는 발문을 의도적으로 이 발문을 첨부하였거나, 아니면 여러 금강경 판본을 판별하지 못하여 착오로 첨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이와 동일본이 없어 정확한 간행 배경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대략 고려 후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서지적 사항

목판본 1책이다. 이 책의 서지적 특징을 살펴보면, 변란은 상하단변(上下單邊)이며, 상하간의 광곽의 높이는 18㎝이다. 판면에 계선(界線)이 없으며, 또한 판심(板心)과 어미(魚尾)도 보이지 않고 있다. 한 장의 앞면은 7행이며, 뒷면은 8행으로 되어 있어 한 판은 모두 30행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각 행은 모두 16자씩 배자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이 책은 본래 권자본(卷子本) 형식으로 간행되었던 송원판본을 저본으로 복각(覆刻)한 이후 조선시대에 후쇄하여 선장 형태로 장책(粧冊)한 것이다. 전후의 표지는 원래의 표지로 볼 수 없으며, 근래에 새롭게 비단으로 장정하고 제첨을 부쳤다. 현재 동국대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내용

구마라집의 번역본을 바탕으로 당나라 육조 혜능이 협주한 것으로, 권수에 금강계청(金剛啓請)과 발원문(發願文)이 있고, 다음 행에 소자로 육조의 서문이 실려 있다. 책 끝에는 반야진언(般若眞言)과 보궐진언(補闕眞言)이 있으며, 특히 다른 책에서는 볼 수 없는 영험찬(靈驗讚)이 수록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그런데 이 책의 말미에는 고려 우왕 13(1378)년에 간행된 금강경천로해(金剛經川老解)의 말미에 수록된 발문과 동일한 이색(李穡)의 발문이 보이고 있어 의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본문에 수록된 주해문이 야보(冶父) 천로(川老)의 주해가 아니라, 육조 혜능의 주해가 협주형식으로 실려 있어 발문의 내용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판식의 형식도 발문에는 선장 형식의 판심이 보이고 있는데 비하여 본문에는 권자본 형식으로 판심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어느 불상의 복장에서 수습된 이후 보수과정에서 이 발문을 무의식적으로 추록하여 오해를 일으킨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비록 완결이 심하게 보이고 권말에 발문이 다른 판본의 것이 첨가되어 있기는 하나 현존하는 유일본이다. 또한 본문의 주석이 육조 혜능의 주해를 재편하고 있어 조선시대 삼가해(三家解)와 오가해(五家解) 주석본 및 언해저본과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광주 자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의 복장전적고」(송일기, 『서지학보』제28호, 2004.12)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송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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