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서양화가 김관호, 김찬영과 동양화가 김윤보, 김광식 등이 평양에서 2년 과정의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미술가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매년 작품 전람회를 개최하여 근대적인 미술품을 일반에 소통시킴으로써 평양지역 미술 진흥에 기여하기 위해 결성된 미술단체이다.
1925년 7월 평양부내 유지의 발기로 도쿄미술학교 출신 김찬영 등과 함께 삭성회라는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서양화 보급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회화 연구기관이었던 삭성회의 장소는 부내 천도교종리원내였다. 동양화과의 1개월 회비는 1원, 서양화 1개월 회비는 2원이었고 연구과목으로는 동양화, 수묵담채, 서양화, 묵화, 유화 등이 개설되었다. 수업연한은 만 2년이었으며 담임강사에는 동양화의 김윤보, 김광식이 가르쳤고 서양화는 김관호, 김유방이 맡았다.
1926년부터 열렸던 삭성회전람회는 경성의 서화협회전람회와 함께 민족적인 색채를 띤 양대 전람회로서 일반대중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조선일보 평양지국이 후원했던 1927년 제2회 미술전람회의 경우에는 전국 각지에서 총 416점이 출품되어 성황을 이루었다. 우천에도 불구하고 입장자가 천여 명에 달하는 대성황을 이루었던 제2회전은 명화를 현장 투표하여 투표수를 제일 많이 차지한 그림과 일등에 투표한 사람 가운데서 추첨하였다. 이후 미술학교로 승격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기성회준비위원을 선임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현되지 못했고, 그 활동이 미미해지다가 1930년대 초 사실상 해체되었다.
권명덕, 박영선, 현리호, 최연해 등은 평양 화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 삭성회화연구소 출신 화가들로, 이후 청도회(靑都會), 5월동인회, 평양양화협회 등을 결성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길진섭, 문학수, 정관철 같은 제자를 길러냈으며, 1928년 무렵에는 삭성회를 미술학교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도 있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수업연한 2년의 회화연구소를 개설하여 미술가 양성에 주력하는 한편, 매년 작품전람회를 개최하여 근대적인 미술품의 보급과 평양지역 미술 진흥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