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수 ()

회화
인물
북한에서 평양예술문화협회 미술부장,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화가 · 교육자.
이칭
이칭
문경덕(文慶德)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6년 5월 18일
사망 연도
1988년 3월 22일
출생지
평양
정의
북한에서 평양예술문화협회 미술부장,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한 화가 · 교육자.
생애 및 활동사항

문학수(文學洙)는 1916년 변호사 문봉의(文鳳儀)의 서자로 출생했다. 1929년 평양 상수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동맹휴학으로 인해 중퇴했다.

이후 1932년 도일하여 이듬해부터 가와바타미술학교(川端畵學校)에서 그림공부를 시작하고 1935년 분카학원(文化學院)에 입학하였다. 재학 중인 1937년부터 1940년까지 자유미술가협회 활동에 참가하였다. 자유미술가협회는 1930년대 후반 일본의 대표적인 아방가르드미술그룹으로, 구상과 추상의 구별 없이 자유로운 창작을 지향하면서 유화ㆍ수채화ㆍ판화ㆍ소묘ㆍ콜라주ㆍ오브제ㆍ사진 등 7종목으로 분류하여 전시를 개최했다. 조선인으로는 유영국(劉永國)ㆍ김환기(金煥基)ㆍ이중섭(李仲燮)ㆍ박생광(朴生光)ㆍ이규상(李揆祥) 등도 참여했다. 문학수는 제1회 자유미술가협회전에 「말이 보이는 풍경」을 출품하였고, 1940년에는 경성에서 개최된 미술창작가협회 경성전에도 참가했다.

문학수는 1941년 이중섭, 이쾌대(李快大), 유영국 등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선인 미술가들과 함께 일제시대의 관전인 조선미술전람회 중심의 친일미술을 배격하고 작가의 개성을 중요시하고 순수미술을 추구하는 조선신미술가협회를 결성하여 창립전을 개최하였다.

귀국 전 서구 모더니즘의 자유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며 초현실주의적인 화풍을 모색하던 시기의 작품으로는 「비행기가 있는 풍경」(1939), 「하늘을 나는 말」(1941), 「말을 부리는 사람」(1942) 등이 있다.

그러나 1944년 귀국 후 그의 화풍은 일변하게 된다. 평양 제4녀자중학교 도화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북한 최초의 예술단체인 평양예술문화협회를 결성하고 미술부장으로 활동하였는데, 이때부터 문학수는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 미술로 전향한다. 이와 함께 1950년 평양미술대학의 전신인 평양미술전문학교 교무주임, 국립미술학교 회화학부 강좌장 등을 역임하면서 미술교육가로서 활동하였다.

1953년 제작한 유화작품 「혁명의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개선을 환영하는 평양시 군중대회」는 평양 개선광장의 벽화로도 제작된 그의 대표작으로, 1961년까지 여러 차례 개작되었다. 1961년에는 예술학 부교수에 임용되고, 1964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위원장으로 선출되었으며, 김일성 표창도 수상하는 등 훌륭한 교육자이자 북한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1971년 주체사상에 의거, 북한미술을 유화보다 조선화 위주로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미술계에 큰 전환이 일어나면서 그는 일반작가의 신분으로 강등되었고 1988년 신의주에서 사망했다.

상훈과 추모

일본 유학시기인 1938년 제2회 자유미술가협회에 「말이 보이는 풍경」 등으로 협회상을 수상하였다. 귀국 후 북한에서 활동하면서 사회주의 미술로 전향한 후 유화 「영웅 조옥희」(1952)와 「첫돌」(1955)로 문학예술 2등상을 수여했으며, 활발한 교육활동과 작품활동을 인정받아 김일성 표창을 받았다.

참고문헌

『매일신보』(1943. 2. 26)
『조선력대미술가편람』(리재현, 평양: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4)
「문학수의 생애와 회화연구」(안혜정, 전남대학교, 2006)
「신미술가협회 작가 연구」(김현숙,『한국근현대미술사학』No.10,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5)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조선화 성립과정을 중심으로」(박계리, 『통일문제연구』15호, 평화문제연구소, 2003)
「신미술가협회 연구」(윤범모,『한국근현대미술사학』No.5, 한국근대미술사학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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