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수서화연구회 ()

회화
단체
고등보통학교 여학생을 주 대상으로 서화를 교육하기 위해 1922년에 설립된 서화교육기관.
이칭
이칭
규수서화회, 창신서화연구회, 창신서화회
정의
고등보통학교 여학생을 주 대상으로 서화를 교육하기 위해 1922년에 설립된 서화교육기관.
연원 및 변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화교육기관인 창신서화연구회는 1922년 12월 이길선의 공평동 사택에서 출범했다. 이규채(李圭彩)와 김권수(金權洙) 두 명의 교사와 김정수(金貞洙)ㆍ정기임(鄭己妊)ㆍ이효진(李孝鎭)ㆍ이정환(李貞煥)ㆍ이정만(李正萬) 등 5명의 제자로 시작되었다.

이후 최송설당(崔松雪堂)을 회장으로 평의원에 위관식(魏寬植) 등 4인, 고문에 이완용(李完用)을 추대하여 단체를 이끌었다. 같은 해 4월부터는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모집했다. 이후 고문에 백당(白堂) 현채(玄采)와 이완용이, 회장에는 김순영(金純迎), 부회장에 방무길(方戊吉)로 바뀌었다. 새로운 임원진과 함께 간사에 김석당(金石堂)ㆍ 김신복 (金信福)ㆍ김희경(金熙卿)ㆍ이순자(李順子)ㆍ김정수(金貞洙)ㆍ정연세(鄭然世)ㆍ이효진(李孝鎭)ㆍ이정환(李貞煥)ㆍ심재덕(沈載德)ㆍ이정만(李正萬)이 선임되었으며, 평의원에는 김영배(金寧培)ㆍ김성만(金成萬)ㆍ오삼주(吳三柱)ㆍ고제원(高悌源)ㆍ김석기(金奭基)ㆍ위관식(魏寬植) 등으로 재조직 되었다.

1923년 3월 17일 규수서화전람회를 갖고 8월에 지방 순회전시를 개최하는 등 의욕적인 활동을 보였으나, 1923년 9월 20일 전주 순회전시 이후 기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기능과 역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자고등보통학교 재학생을 대상으로 서예ㆍ화조 및 사군자를 지도하였으며, 이후 남녀 구분 없이 모집하여 학생들의 전시와 함께 1923년 8월에는 부산ㆍ대구ㆍ경주ㆍ대전ㆍ밀양ㆍ전주 등의 지방 순회전시도 실시했다.

의의와 평가

규수서화연구회(창신서화연구회)는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서화를 지도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서화교육기관으로서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한국근대미술의 역사』(최열, 열화당, 1998)
「한국 근대 여성의 서화교육과 작가활동 연구」(김소연,『미술사학』제20호, 2006)
『동아일보(東亞日報)』(1923. 3. 14, 1923. 8. 22, 1923. 8. 29, 1923. 9. 12)
『매일신보(每日申報)』(1923. 2. 28, 1923. 3. 14, 1923. 3. 25, 1923. 3. 31)
『조선일보(朝鮮日報)』(1923. 4. 2)
한국사데이터베이스(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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