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온녀는 1920년 강원도 평강에서 태어났다. 1936년라남고등여학교를 졸업하고
1938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여자미술학교 고등과 서양화부에 입학했다. 이듬해 1939년, 동경에 있는 조선유학생들이 결성한 백우회(白牛會)의 후신인 재동경미술가협회의 제2회전과 1940년 제3회전에 참석했다. 1940년에는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춘(春)의 습작(習作)」을 출품하여 서양화부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1941년 동경 여자미술학교 졸업하고 다시 일본대학 미술학부 연구과에 입학해서 1943년 졸업하였다. 1946년조선에 귀국한 후 경성일보기자, 용산고 교사 등을 지내며 1947년 9월에는 서울 화신화랑에서, 1948년 1월에는 서울 동화화랑에서 유화개인전을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전개해 나갔다. 1949년 7월에는 이현옥(李賢玉), 배정례(裵貞禮), 박래현(朴崍賢), 천경자(千鏡子) 와의 5인전에 참가하였으며 같은 해 제1회 국전에서 입선했다.
1950년 9․28 서울 수복 때 월북했으며 이후 자강도미술창작사 소속으로 활동하며 국가전람회 심사위원을 역임하는 등 북한화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월북 이후의 대표작으로는 「김일성 초상화」를 비롯해 「남녘의 딸들」(1966), 「아버지, 오늘의 생산성과는?」(1958) 등 사회주의사상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시각화하는 주제의 작품들과 「묘향산풍경」(1964)과 같은 풍경화 작품 등이 있다.
북한 공훈예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