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규(朴性圭)는 일본 분카학원(文化學院) 출신의 화가이다. 귀국 후 1939년부터 1940년, 1941년, 1943년, 1946년 등 여러 차례 개인전을 통해 주로 파스텔화를 선보였다. 1945년에는 해방직후 결성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 산하의 조선미술건설본부에 참여하였고 1946년에는 좌파와 무소속 성향의 작가들로 결성된 조선조형예술동맹에서 활동했다. 이 당시 그가 제작한 혁명투쟁을 주제로 하는 작품들로는 「혁명에의 길 1」, 「혁명에의 길 2」, 「투사」, 「섬」 등이 있다.
그는 삽화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1946년 2월에는 이승만(李承萬), 윤희순(尹喜淳), 김규택(金奎澤), 정현웅(鄭玄雄), 최영수(崔永秀), 안□주(安□柱), 김용환(金龍煥), 김의환(金宜煥), 조병덕(趙炳悳), 홍우백(洪祐伯), 한홍택(韓弘澤) 등과 함께 삽화가, 만화가의 친목단체인 소묵회(素墨會)를 결성하였다. 그의 작품이 삽화로 게재된 문헌으로는『어린이 나라』, 『조선주보(朝鮮週報)』 등이 있다.
1947년 이후에 그는 이쾌대를 위원장으로 하는 중립적인 성향의 조선미술문화협회에 참가하였다. 이후 1950년에는 국전의 아카데미즘과 재야 단체들의 이데올로기 논쟁으로부터 벗어나 “민족 미술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미술의 현대화를 추구하여 새로운 우리미술을 재건하고자” 했던 모더니즘 계열의 중견작가들로 결성된 50년 미술협회에도 가입하였으나 전쟁으로 인해 구체적인 활동은 펼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