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함경북도 무산에서 태어나 도쿄 니혼미술학교(日本美術學校)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독립미술가협회전 및 선전에서 입선하였으며 해방 전에 연변으로 이주해서 교육 활동을 하였다.
1914년 8월 20일 조선 함경북도 무산군에서 출생, 1921년 무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 15세에 중국 간도성 용정(龍井) 동흥중학교(東興中學校)를 다녔다. 1935년 일본 도쿄 니혼미술학교 서양화과를 다녔다. 1938년부터 도쿄 우에노 공원 도쿄도립미술관에서 열린 제8회 독립미술전람회에서 「붉은 집」으로 이용하(李龍河)와 함께 입선하였다. 4월 화신갤러리에서 제1회 재동경미술학생협회종합전에 참여하였다. 9월에는 함경북도 무산 자신의 고향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39년, 1940년에도 독립미술전람회에 「2층집」과 「풍경」으로 입선하였다. 일본에 있는 김만형은 작품 「풍경」을 보고 “무난한 작품이나, 이후 한 걸음 더 나가 즉흥적인 사생화에서 벗어나 조형적이고 구성적인 튼튼한 작품을 보여주기 바란다.”라고 평하였다. 1940년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뒷골목」이 입선하였다. 길진섭이 당시 조선일보에 쓴 「제19회 조선미전 서양화 평」에 따르면 「뒷골목」은 포비즘 작품으로 좋은 마티에르를 갖추고 있으되 입체감이 부족하다고 꼬집었다. 1940년대 초 연변으로 가서 간도 광명여자중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그 후 1949년 연변대학 강사로 강의를 시작했으며 1957년부터는 연변예술학교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부교수를 역임하였다. 1959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인민정부의 인민대표로 당선됐다. 1969년부터 1985년까지 연변예술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87년 서울에서 석희만미술전시회를 개최하여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하였다. 2003년 12월 일본 동경에서 89세로 타계하였다.
제8회 독립미술협회전람회 「붉은 집」 입선, 일본 도쿄(1938).
제9회 독립미술협회전람회 「2층 집」 입선 (1939).
제10회 독립미술협회전람회 「풍경」 입선 (1940).
제19회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뒷골목」 입선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