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산임수는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을 내려다보이는 지세를 갖춘 터이다. 배산임수한 지형은 마을이나 건축 조영물이 들어설 이상적인 지형으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터이다. 이러한 터는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아 방어하기가 좋다. 또 터가 경사지고 앞으로 트여 있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고 배수에 유리하다. 겨울철에는 등지고 있는 산이 차가운 바람을 막아준다. 여름철에는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과 들판을 통해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배산임수는 농경생활을 하기에 적합하면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특성을 지닌다.
배산임수의 ‘배산(背山)’은 뒤로 산을 등지고 있다는 뜻이고, ‘임수(臨水)’는 앞으로 강, 시냇물, 연못 따위의 물을 내려다보거나 물에 닿았다는 뜻이다. 배산면수(背山面水) · 배산임소(背山臨沼) · 배산면락(背山面洛) · 배산임락(背山臨洛) · 배산임계(背山臨溪) 등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며, 배산면양(背山面陽)으로도 표현된다. 산을 음(陰)으로 보는 것에 대해, 물을 양(陽)으로 보기 때문이다.
배산임수한 터는 또한 산하금대(山河襟帶) · 산수회포(山水回抱) · 산수환포(山水環抱) 등과 같은 뜻으로 형국의 크기, 지형 조건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한국의 마을이나 건축 조영물은 일반적으로 산의 경사가 완만하게 아래로 내려오다가 시냇물을 끼고 들판으로 바뀌는 산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지형을 이룬 터를 배산임수하고 있다고 말한다.
산이 많은 지형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마을이나 건축 조영물이 배산임수한 지형에 자리 잡고 있으면 그 터는 풍수가 좋다고 여겨왔다. 이러한 터는 농경생활을 하기에 적합하면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특성을 지닌다.
배산임수한 지형은 이미 조선시대에 사람이 살기에 이상적인 터라고 언급되었다. 이산해(李山海, 1539∼1609)는 『아계유고(鵝溪遺稿)』에서 팔선대(八仙臺) 인근 서촌(西村)의 “민가가 서로 마주하고 있는데 모두 배산임수하고 있으며 샘이 달고 땅이 기름지고 수목이 울창하고 곡식이 무성하여 매우 좋다(民居相望 皆背山臨水 泉之甘 土之沃 樹木之鬱密 禾穀之茂盛 甚可喜也).”고 하였다.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치생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먼저 지리를 가려야 한다. 지리는 물과 땅이 아울러 통하는 곳을 최고로 삼는다. 그러므로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있으면 곧 훌륭한 곳이 된다(治生必須先擇地理 地理以水陸並通處爲最 故背山面湖乃爲勝也)”라며 배산면호(背山面湖)한 터를 말한 것이나, 정조(正祖)가 『홍재전서(弘齋全書)』에서 “옛말에 일백 가구의 마을과 열 집의 저자라도 반드시 산을 의지하고 시내를 끼고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古語不云乎 百家之聚 十室之市 亦必依山帶溪者是也)”라고 하며 의산대계(依山帶溪)한 터를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배산임수한 터는 풍수와 깊은 관계가 있다. 풍수에서 말하는 좋은 터는 뒷산에서 흘러들어온 기(氣)가 모인 곳이다. 기는 물을 만나면 움직이는 것을 멈추고 한 곳으로 모이는데, 이를 두고 중국동진(東晋)의 곽박(郭璞, 276∼324)이 찬하였다고 하는 『장서(葬書)』에 “기는 바람을 타면 흩어지고, 물을 경계로 하면 멈춘다. 옛 사람이 기를 모아 흩어지지 않게 하고, 기가 다니게 하다가 멈추고자 하여 이를 풍수라 불렀다.(氣乘風則散 界水則止 古人聚之使不散 行之使有止 故謂之風水)”라고 설명하였다. 배산임수한 터는 이러한 지세를 한 곳이다.
배산임수한 터에 건물을 앉힐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건물의 좌향(坐向) 잡기와 안대(案對)의 선택이다. 좌향 잡기는 터에 건물을 어떻게 앉힐 것인가를 살펴 결정하는 일을 말한다. 좌향의 ‘좌’는 터에 건물이 앉는 방위를 말하고, ‘향’은 건물이 앞을 내다보는 방향을 이른다.
건물이 잘 앉혀지면 그 터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향은 집 앞으로 바라보이는 산인 안대와 관계된다. 건물의 향을 정할 때는 안대의 선택을 우선으로 한다. 같은 마을에 있는 집들이라도, 안대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각 집들은 향을 달리 한다. 안대의 형상은 바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심상을 좌우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배산임수한 국면을 경관과 외부공간을 구성하는 관점에서 보면, 터 뒤를 받치는 주산(主山), 소조산(少祖山), 조산(祖山)은 산 뒤에 산이 있는 형상을 이루며 겹겹으로 터를 둘러쌈으로써 터를 받치는 경관이 깊이감이 있도록 한다.
터 앞으로 흐르는 시내 건너 평활하게 트인 전경(前景)은 그 방향의 안산(案山), 조산(朝山)이 터의 대경(對景), 차경(借景)이 되도록 해서 터 앞으로 멀리 내다보는 원경의 중심을 형성하도록 한다.
배산임수한다는 것은 마을이나 건물이 들어선 터가 그러하다는 뜻이지만, 그러한 터에 살거나 생활하는 사람도 배산임수하게 된다. 터와 사람이 함께 산을 등지고 물을 내려다보며 밖을 내다보는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장소는 터와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묶여 있음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배산임수한 터는 그 주위로 산이 둘러싸고 있어서 외부에 잘 노출되지 않아 방어에 유리할 뿐 아니라, 터가 경사지고 앞으로 트여있기 때문에 일조량이 많고 양명하며 배수에 유리하다.
또한, 겨울철에는 터 뒤로 등지고 있는 산이 그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철에는 앞으로 흐르는 시냇물과 들판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마을로 받아들이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마을 뒷산은 땔감과 목초 등 일상생활과 생업에 필요한 자원을 수월하게 취할 수 있는 곳이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개천은 마을에서 나오는 하수를 처리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마을 앞 경작지에 필요한 관개용수를 제공하는 기능을 한다. 이와 같이 배산임수한 터는 기후 · 지형 · 생업 · 생태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선호되었다.
겨울이 춥고 여름이 더운 기후 조건, 산지가 많은 지형 조건에서 배산임수한 터는 예로부터 한국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잡는데 필요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배산임수는 삶의 체험으로부터 개념화되고 체계화된 것이며, 자연 속에서 인간이 취해 온 매우 구체적인 삶의 방식의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