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동금(玉洞琴)은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셋째 형인 옥동(玉洞) 이서(李漵, 1662~1723)가 만들어 연주하던 거문고이다.
옥동금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 고종 때 학자인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의 문집 『 수당집(修堂集)』 권1 「군자금가(君子琴歌)」에 전한다. 이 기록에 의하면, 옥동금은 옥동 이서가 금강산에서 벼락 맞은 오동나무를 얻게 되어 이로 거문고를 만들고, 뒤판에 시를 지어 새겼으며, 당시에는 이를 군자금(君子琴)이라 불렀다고 한다.
군자금으로 불렸던 이 거문고는 뒤판에 이서가 짓고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가 쓴 시와 함께 이서의 친필을 집자(集字)한 ‘옥동(玉洞)’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까닭에 현재 옥동금으로 전해진다.
옥동금에 새겨진 시의 원문과 번역문은 아래와 같다.
“봉래에 고을이 그윽하고 한적하니 외로운 줄기 형상이다. 신명이 이곳을 아끼지만 사악함이 간간히 해치면 신이 벽력같이 노한다. 오직 우리 겸보(兼甫)는 내가 서울에 있을 때에 찾아온 것이 아름다운 인연을 맺게 되었다. 밖으로는 예의를 갖춘 모습을 많이 갖추고 속으로는 만 가지 이치를 감추었다. 오청육율이 이에 천심을 얻어서 답답함을 풀고 거짓으로 가득하고 음란함을 씻노라. 한 생각에 어긋남도 이에 금하고 열었나니 이것이 곧 나의 거문고로세. 옥동선생이 짓고 제자 윤덕희는 공경히 쓰노라[蓬萊之洞 幽而世溤 子波相矣 神明所惜 邪崇間賊 神怒霹靂 惟我兼甫 於我京寄 叩之到美 成斯美藏 外備多儀 中藏萬理 五廳六律 爰得天心 宣暢懷鬱 蕩滌邪滛 一念之差 於此早禁 禁之開之 是我之琴 玉洞先生作 弟子尹德熙敬書]."
오동나무인 상판과 밤나무인 뒤판 등 목재의 보존 상태가 뛰어나고, 악기의 전체적인 균형이 좋다. 지금까지 전하는 유물급 거문고가 보통 160㎝의 길이에 20㎝ 정도의 너비인데 비해 옥동금은 175㎝의 길이와 19㎝의 너비로 몸통이 가늘고 길이가 길다.
또한 거문고의 상판인 오동나무는 대개 5년 이상 자연 상태에서 건조시켜서 나무의 진을 빼고 재질을 단단하게 만들어 사용한다. 옥동금은 벼락을 맞아 건조가 단시간에 이루어진 데다가 죽은 채 방치되었던 터라 나무의 조직이 더욱 치밀해져서 다른 거문고에 비해 더욱 맑고 명료한 음색을 가졌을 것으로 보인다.
옥동금은 19세기에 한차례 보수가 되었다. 『수당집』에 기록된 내용에 의하면 울림통 중 파손된 부분을 아교로 붙이고 줄을 갈고 괘와 안족을 보충하였다고 한다. 2014년 10월 22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