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이남규의 손자 이승복(李昇馥) 등이 편집·영인하였다.
11권 1책. 필사 영인본.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64수, 부(賦) 1편, 권2에 교서 2편, 소(疏) 14편, 차(箚) 2편, 계(啓) 2편, 의(議) 1편, 장(狀) 9편, 권3에 서(書) 85편, 권4에 잡저 11편, 권5에 서(序) 29편, 권6에 기(記) 29편, 권7에 발(跋) 18편, 논(論) 6편, 변(辨) 2편, 설(說) 5편, 찬(贊) 8편, 잠(箴) 6편, 명(銘) 23편, 송(頌) 1편, 표(表) 5편, 전(箋) 5편, 권8에 상량문 3편, 축문 9편, 제문 20편, 애사 1편, 전(傳) 1편, 기사(記事) 1편, 유사 1편, 권9에 묘지명 18편, 권10에 묘갈명 12편, 비(碑) 1편, 음기(陰記) 2편, 묘표 1편, 권11에 행장 12편, 시장(諡狀) 3편, 부록으로 시 3수, 기·가장(家狀)·묘갈명 각 1편, 제문 12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에는 서경(敍景)·영물(詠物)의 서정시가 많고, 한말 어지럽던 시대적 상황에 대한 현실고발과 우국충정을 표현한 시도 상당수 있다. 「속정원록(續貞元錄)」·「한서문답(寒棲問答)」·「영흥잡영(永興雜詠)」 등은 각각 수십 수로 된 연작시다. 특히 「영흥잡영」 19수는 관북 지방의 백성들이 겪고 있는 어려운 생활상을 그린 작품으로 주목을 끈다. 관리 수탈의 잔학상, 원산의 개항으로 인한 곡가(穀價)의 폭등, 외국 상인의 앞잡이가 된 사람들의 발호 등 당시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형상화하였다.
소의 「논비요급왜병입도소(論匪擾及倭兵入都疏)」에서는 1894년(고종 31) 동학교도의 소요는 농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으킨 것으로, 왕실의 낭비와 탐관오리들의 주구(誅求)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고, 그 시정을 촉구하였다. 한편, 동학교도의 소요를 빙자하여 도성에 들어와 있는 일본군을 철수하게 할 것과 아울러 국가의 방위력을 증강시켜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밖에 10여 편에 달하는 소차가 모두 우국충정을 담고 있다.
서(書)의 「답최익현서(答崔益鉉書)」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고 청나라에 가서 원병을 요청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에 답한 서찰이다. 여기서 당시 청나라의 국내 사정이 위급함을 설명하고, 그러한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밖에 종형(從兄)에게 보낸 서찰 등에는 여러 차례의 국난을 당하면서도 살아 있다가 또 다시 왜적에게 국권을 빼앗기는 큰 변란을 당했음을 한탄하고,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가 나타나 있다.
이 문집에는 한말 우국지사들의 의병 활동과 애국 사상을 담고 있는 글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참고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