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Nazareth)

개신교
단체
한국 기독교 내의 성결교단의 일파.
이칭
이칭
나사렛교회
내용 요약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는 한국 기독교 내의 성결교단의 일파이다. 나사렛교회라고도 한다. 나사렛교회는 온전한 성결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개신교파이다. 한국에서는 1907년부터 성결교회가 활동하고 있었다. 1938년 일본 나사렛 교회의 지도 아래 장성옥이 평양에 나사렛교회를 개척했다. 1948년 미국 나사렛교회 감독 니스(O. J. Nease)가 와서 공식적으로 한국나사렛교회를 시작하였다. 나사렛성결교회의 교역자 양성기관인 천안의 나사렛신학교는 나사렛대학교로 교명을 바꿔 기독교 종합대학교로 발전하였다.

정의
한국 기독교 내의 성결교단의 일파.
개설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는 성결 전통에 속하는 개신교의 일파이며,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나사렛교회와 연결되어 있다. 1948년에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시작된 나사렛성결회는 웨슬리의 전통을 따라 성결을 강조하고 있으며, 천안에 나사렛대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초기에는 나사렛교회라고 불렸으나, 1974년 국제본부의 승인을 받아 한국에서는 나사렛성결회라고 부르고 있다.

설립배경

나사렛교회는 기존의 감리교회가 웨슬리의 근본정신을 망각하고 세속화되었다고 판단하고, 이를 갱신함과 동시에 온전한 성결과 가난한 사람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해서 20세기 초 미국에서 만들어진 개신교파이며, 한국의 나사렛성결교회는 이 전통을 이어받아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한국의 나사렛성결교회의 뿌리는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 동경성서학원을 졸업하고 1933년 성결교회 목사가 된 장성옥은 나사렛교회로 옮겨 일본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재일조선인나사렛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일본 나사렛교회는 1937년에 그를 한국으로 보내서 1938년 5월에 평양 신양리 나사렛교회를 개척하도록 했다. 당시 장성옥의 사역은 일본 나사렛교회의 지도 아래 있었다.

일본에서 온 장성옥의 활동 외에 이미 한국에서는 1907년부터 성결교회가 세워져 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 한국 교회의 자치문제를 놓고, 곽재근을 중심으로 하는 일단의 그룹이 성결교회를 탈퇴하여 1936년 하나님의 교회라는 새로운 단체를 만들었다. 해방 후 이들은 오래 동안 미국 교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던 정남수에게 미국의 성결교파와 연결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고, 정남수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미국 나사렛교회와 접촉하여 한국에서 나사렛교회의 선교를 시작하였다. 1948년 미국 나사렛교회 감독 니스(O. J. Nease)는 정남수와 함께 한국에 와서 과거 하나님의 교회에 속했던 사람들을 주축으로, 장성옥의 나사렛교회와 합하여 공식적으로 한국나사렛교회를 시작하였고, 정남수가 그 책임자가 되었다. 그리고 6·25전쟁 기간 동안에 정남수 목사는 미국과 캐나다를 순회하면서 한국 나사렛교회를 위해서 일했다.

전쟁이 끝난 후 나사렛교회는 본격적으로 교단을 정비해 나갔고, 그 일차적인 과제는 나사렛교회에 속한 교회의 재산을 등록해서 하나의 법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정남수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과 겹쳐져1954년에 곽재근을 비롯한 하나님의 교회 출신 교역자들로 하여금 다시 하나님의 교회를 설립해 나가게 만들었다. 장성옥도 교도소선교를 위해서 나사렛교회를 사임하였다.

1954년 미국 나사렛교회 본부에서는 오웬스(Donald D. Owens)를 초대 한국 선교사로 파송하여 한국 선교를 보다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결국 정남수는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서 1956년 은퇴하였고, 한국 나사렛교회는 미국 선교사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오웬스는 정남수가 쌓아 놓은 기반 위에서 나사렛교회를 발전시켰다.

1955년에는 정식으로 한국 지방총회가 조직되어 박기서 목사가 초대 감독으로 선출되어 운영되다가 1973년 지방총회 시대를 마감하고, 전국을 두 개의 연회로 나누었고, 그 후 두 개의 연회는 계속 발전하여 여러 개로 나뉘었다. 그러나 연회마다 감독이 있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므로, 이를 통합하기 위해 2002년 하나의 통합 총회를 구성해서 단일 감독을 선출하였고, 그 밑에 여러 지방회를 만들어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나사렛성결교회의 교역자 양성기관인 나사렛신학교는 오래 동안 오웬스 선교사가 책임을 맡고 있었으나, 그 뒤 패취(William H. Patch) 선교사가 책임을 맡아서 운영하면서 교명을 나사렛대학교로 바꿔 교역자 양성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분야를 비롯하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여러 지도자를 양성하는 기독교 종합대학교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한국인이 총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 대부분의 교단들이 발전함에 따라서 미국 본부와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지만 나사렛교회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유지하면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미국 나사렛교단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서 해외선교, 신학교육, 대학발전, 출판 사업을 도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의 빌리 선데이 정남수목사』(김영백, 도서출판 나사로, 2002)
「한국 나사렛교회의 형성사 연구」(강삼영, 『복음과 신학』3, 1998)
「간추린 나사렛성결교회 60년사」(김영백, 『복음신문』2008.1.6.)
집필자
박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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