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폐이정윤음 ()

조선시대사
문헌
1759년 9월, 과거제의 개편을 위해 영조가 내린 윤음과 새로 마련한 과거제 시행 지침인 ‘대소과이정절목(大小科釐正節目)’을 모아 활자로 간행한 책.
이칭
이칭
어제과폐이정윤음(御製科弊釐正綸音)
문헌/고서
편찬 시기
1759년(영조 35)
간행 시기
1759년(영조 35)
편자
예조
권책수
1책(9장)
판본
무신자
표제
科制綸音, 科弊綸音 등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미국 UC버클리대학 아사미문고
내용 요약

『과폐이정윤음(科弊釐正綸音)』은 1759년(영조 35) 9월 영조가 과거제의 개편을 위해 내린 윤음(綸音)·전교(傳敎)와 과거제 개편안의 시행 지침인 『대소과이정절목(大小科釐正節目)』 등을 모아 활자로 간행한 책이다. 주된 내용은 문과에 ‘일경강(一經講)’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서명은 『어제과폐이정윤음(御製科弊釐正綸音)』이라고도 한다.

정의
1759년 9월, 과거제의 개편을 위해 영조가 내린 윤음과 새로 마련한 과거제 시행 지침인 ‘대소과이정절목(大小科釐正節目)’을 모아 활자로 간행한 책.
서지 사항

1책 9장이다. 반엽광곽(半葉匡郭)의 크기는 세로 25.1cm×가로 17.5cm이며, 책의 크기는 세로 35㎝×가로 22.6㎝ 정도이다. 한 면은 10행 18자로 되어 있다. 왕명에 따라 예조(禮曹)에서 활자로 인쇄하였다. 국왕의 열람을 위한 내입용(內入用), 의정부 · 예조 · 성균관 · 사고(史庫) 보관용, 전국 8도와 3 도호부 배포용 등으로 총 20부를 인출하였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미국 UC버클리대학 도서관 아사미문고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조선시대 관리 임용의 주요 경로였던 과거제는 숙종 대 이후에 이르러 많은 문제점이 나타났다. 응시자가 늘어나면서 국가의 시험 관리에 새로운 허점들이 드러났으며 과도한 경쟁에 직면한 응시자들은 합격을 위한 편법들을 강구하여 시험장의 질서를 교란하였다. 이에 따라 과거제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 가운데 국왕이 된 영조는 유생들이 유교 경전을 읽고 실천해야 사회도 안정될 수 있다고 인식하며, 주1의 독서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1759년 과거에 경서의 강독 시험을 도입하는 제도의 개편을 단행하였다.

조정에서 과거제 개혁안을 마련 중이던 1759년 9월 영조는 잇달아 문과에 대한 『어제과폐이정윤음(御製科弊釐正綸音)』, 생원 · 진사시에 대한 『어제소과권강윤음(御製小科勸講綸音)』, 주8, 주9 등 성균관 주2에 대한 주11를 내렸다. 조정에서는 그 내용을 반영하여 『대소과이정절목(大小科釐正節目)』을 제정하였다. 그리고 이 일련의 과정을 정리하여 『과폐이정윤음(科弊釐正綸音)』을 간행하여 반포하였다.

구성과 내용

이 책은 『어제윤음(御製綸音)』과 『대소과이정절목』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제윤음』은 과거제 개혁에 대한 국왕의 윤음(綸音)과 전교(傳敎)를 모은 것으로 새로운 절목을 마련하게 된 취지와 그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1759년 9월 18일의 『어제과폐이정윤음』, 9월 20일의 『어제소과권강윤음』, 9월 21일의 절제 · 전강 등 성균관 과시에 대한 전교 등이 수록되어 있다. 뒷부분의 『대소과이정절목』은 국왕의 윤음과 조정의 논의를 토대로 마련한 시행안이다.

주요 내용은 시험에 주12이 포함되지 않은 증광문과, 정시, 절일제(節日製), 생원 · 진사시 등에 강경 시험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문과와 이에 준하는 절일제의 경우 초시 합격자나 제술 합격자를 대상으로 삼경(三經) 중에서 1경을 강경하는 ‘일경강(一經講)’을 시행하고, 생원 · 진사시는 ‘소학강(小學講)’을 시행하게 하였다.

시험 방식은 책의 원문을 보지 않고 암송 · 해석하는 주5이었다. 이외에 주7의 시행 횟수를 연 1회로 제한하고, 도기전강(到記殿講) 등의 주10 인원을 제한하는 등의 규정도 포함되어 있다. 또 국왕이 합격자를 불러 직접 재시험하는 주6도 명문화하였다.

의의와 평가

영조는 과거의 문제를 경학 중심으로 파악하여 강경이 본(本)이고, 제술이 말(末)이라 생각했으며, 성균관은 경서를 공부하는 곳이라 인식하였다. 이에 일경강 제도를 도입하여 강경과 제술을 겸비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조선 초기의 이상을 회복하려 하였다.

하지만 과거제가 제술 시험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가운데 강경 시험을 도입한 것은 유생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 결국 시행 가부를 둘러싼 논란을 거듭한 끝에 1766년(영조 42) 영조 스스로 『대소과이정절목』의 시행을 철회하였다. 이로써 일경강 제도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영조가 도입했던 일경강은 이후 과거제 개혁안의 주요한 모델이 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영조실록(英祖實錄)』
『과폐이정윤음(科弊釐正綸音)』
주석
주1

옛 성현들이 유교의 사상과 교리를 써 놓은 책. ≪역경≫ㆍ≪서경≫ㆍ≪시경≫ㆍ≪예기≫ㆍ≪춘추≫ㆍ≪대학≫ㆍ≪논어≫ㆍ≪맹자≫ㆍ≪중용≫ 따위를 통틀어 이른다. 우리말샘

주2

일정한 시기에 정기적으로 보는 시험. 우리말샘

주5

책을 스승 앞에 펼쳐 놓고 자기는 보지 아니하고 돌아앉아서 욈. 우리말샘

주6

임금이 몸소 과장(科場)에 나와 시험 성적을 살피고 급제자를 정하던 일. 또는 그 시험. 우리말샘

주7

조선 시대에,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이를 기념하고자 보게 하던 과거. 문무과(文武科)에만 한정하였으며 별시, 정시, 증광시 따위가 있었다. 우리말샘

주8

조선 시대에, 성균관과 지방의 유생을 대상으로, 명절인 인일절(人日節)ㆍ상사절(上巳節)ㆍ칠석절(七夕節)ㆍ중양절(重陽節)에 실시한 과거. 의정부, 육조 등의 당상관이 성균관에서 제술로써 인재를 뽑았다. 우리말샘

주9

조선 성종 때부터 경서를 읽고 그 뜻을 밝히는 일을 권장하기 위하여 실시하던 시험. 성균관의 유생 가운데서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 임금이 친히 대궐에 모아 놓고, 삼경이나 오경에서 찌를 뽑아서 외게 하던 것으로, 뒤에 생원, 진사, 명문의 자제 등도 참가하였다. 우리말샘

주10

합격자의 순서를 가르는 최종 시험인 전시에 직접 응시할 자격을 주던 일. 식년과 문과의 예비 시험인 초시와 본시험인 복시를 면제하였다. 우리말샘

주11

임금이 명령을 내림. 또는 그 명령. 우리말샘

주12

불경을 강독하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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