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부(李彙溥; 1809~1869)는 1849년(헌종 15)부터 단성현의 현감을 지냈는데, 1851년부터 현감을 끝내는 1853년까지 단성현의 행정 및 재정 업무와 관련한 기록을 남겼다. 현존하는 자료에는 특히 당시 단성의 재정운영으로 가장 문제시되던 ‘환곡(還穀)’ 운영에 관한 것이 두드러지며, 기타 지방 통치와 관련한 상부기관으로의 보고와 조정, 경내 각종 폐단에 대한 개선책 시행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때의 선정으로 단성 주민들이 생사당과 선정비를 세우기도 했다.
『구루문안(句漏文案)』은 이휘부가 1851년~1853년 사이에 단성현에서 시행한 행정 및 재정 업무 관련 공문서 기록을 후대에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 원래 몇 권으로 되어 있는지 알 수 없는데, 현존하는 것은 제3권, 제5권, 제7권이다.
제3권은 환곡 폐단에 관련된 문서로만 구성되어 있다. 단성은 작은 고을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환곡 곡총이 9만여 석으로 추정될 정도로 많이 설정되어 주민이 수납(受納)하기 버거웠다. 이에 감영(監營)에서 지원받아 다른 고을로 팔아넘기거나, 감사나 좌의정, 그리고 왕에게 글을 올려 단성의 환곡운영 개선책을 요구했다.
제5권에는 감영, 각 군영, 경차관(敬差官)과 주고받은 공문서와 개선책 실현을 둘러싼 영리(營吏)와의 사통, 각읍 간의 이문(移文)이 주를 이룬다. 군역 정병의 차출과 군포의 상납의 군정 문제, 호역 및 토지세 징수 상의 문제점, 치안에 관한 통제책 등, 지방 통치에서 발생하는 잡다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제7권은 1853년(철종 4)에 수행한 각종 업무 문서들이 수록되어 있다. 형사 및 민사상의 쟁송에 대한 조사보고, 질서 규율을 위한 금지령, 절목(節目) 등이 주를 이룬다.
일반적인 수령 보고서, 명령서와 달리, ‘사통(私通)’, ‘사신(私信)’이 많이 남아있어 지방관의 지방 통치의 세밀한 사정을 읽어낼 수 있다. 중앙과 감영에 보고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지방군현 내의 통치 및 재정 운영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