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국지(和國志)』는 1763년(영조 39) 통신사행의 서기(書記)였던 원중거(元重擧, 1719~1790)가 사행에서 돌아와 1764년경에 저술한 일본 사행록이다. 원중거는 조선 후기 박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연암학파(燕巖學派)’의 일원으로 북학파 실학자들과 활발하게 교유하였으며, 사행에서 돌아온 후 『승사록(乘槎錄)』, 『화국지(和國志)』, 『일동조아(日東藻雅)』라는 3부작의 일본 사행록을 저술하였다. 이 가운데 『화국지』는 단순한 ‘문견록’ 이 아닌 종합적인 ‘일본국지(日本國志)’라는 성격을 띤 저술이다.
『화국지』는 1763년에 원중거가 통신사행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작성한 일본에 관한 총체적인 기록으로, 방대한 내용을 항목별로 기술해 놓은 백과사전적 문헌이다. 원중거는 『화국지』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의 자료를 널리 수집하여 읽고 그 내용을 인용하였으며, 그 뒤에는 자신의 견해 및 논평을 서술하였다. 이 논평에는 원중거 자신의 대일본관과 역사적 시각, 그리고 편찬 경위를 엿볼 수 있다.
그는 이 책에서 조일관계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과거 역사에 비추어 일본을 경계할 것을 강조하였다. 일본과의 관계를 서술한 논평에서는 일본에 대한 경계심과 우리의 반성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국지』는 원중거가 1763년(영조 39) 계미 통신사행의 전 과정을 일기체로 기술한 사행 일기인 『승사록』의 문견록(聞見錄)에 해당한다. 책의 크기는 각각 길이 34.3㎝, 폭 21.3㎝이고, 책의 분량은 세권 합쳐 총 263장에 달한다. 현재 일본의 오차노미즈 도서관[おちゃの水圖書館] 세이키도 문고본[成簣堂文庫本]에 소장되어 있다.
『화국지』에는 일본사와 조일 관계사에 관한 기사가 매우 많은 것이 특징이다. 『화국지』는 천(天) · 지(地) · 인(人) 3권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76항목으로 나누어 기록하였다. 천권의 맨 앞에 나오는 12장의 일본 지도는 적(赤) · 청(靑) · 흑(黑)의 3색으로 그려졌으며 주별(州別) 경계 및 도시명, 육로 · 수로의 교통로, 산과 대천(大川) 등 자연지리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표시되었다.
천권은 26항목으로 8도 66주의 분도, 지리, 기후, 천문, 풍속, 인물, 천황의 본말, 일본의 연호, 관백의 시초, 소잔오존(素盞烏尊), 일본무존, 평신장, 원뇌조의 본말, 풍신수길의 본말, 무주의 본말, 대마도 태수의 본말, 임진년 침략 때의 적의 동정, 중국과의 통사와 정벌, 신라 백제 고려와의 통사와 전벌을 수록하였다.
지권은 31항목으로 관백의 종실록, 각주의 성부, 각주의 씨족, 무주의 내관직, 성과 씨의 차이, 문자의 시초, 학문하는 사람, 이단의 학설, 시인과 문인, 왜의 문자, 언문, 가타카나, 신사, 불법, 중국에 들어간 승려, 사례(四禮), 의복, 음식, 조욕, 언어, 배읍, 여마, 궁실, 종수, 기용, 농작, 잠직, 화폐, 도로, 교량, 주즙을 수록하였다.
인권은 19항목으로 의약, 세금제도, 군사제도, 군사무기, 도적을 다스리는 일, 죄인을 신문하는 일, 노비, 명절, 왜황의 관직, 방음, 음식 이름, 새와 짐승, 우리 조선의 일본정벌 기록, 우리 조선의 통신, 왜관의 사실, 이충무공의 누락된 사적, 제만춘전(諸萬春傳), 안용복전(安龍福傳)을 수록하였다.
원중거는 이 책을 서술하면서 일본 측 사료와 우리나라의 자료를 비교하여 정리하였고, 기존의 사서(史書) 등과 중복되는 부분은 일체 기술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모르는 부분은 ‘미상’이라고 적고 칸을 비워두었다. 이러한 구성 방식은 다른 사행록들과는 약간 차이가 있다. 사행록이 대체로 일기 형식으로 개인적인 견문을 위주로 하거나, 일본 문화에 관한 기록을 부분적으로 담고 있는 것에 반해,『화국지』는 견문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종합적인 자료 수집을 통해서 총체적으로 저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