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중앙교회는 1898년 설립된 개신교 감리교회이다. 1898년 서울 남송현교회 소속 교인이 파송되었고, 1901년 선교사 무스가 춘천에 ‘감리교 신도 모임’을 결성했다. 1906년 이덕수가 춘천 최초의 전도인으로 임명되었다. 선교사 무스와 이덕수 등의 노력으로 성장과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병원과 학교, 유치원, 여자관 등을 설립해 지역사회와 주민을 위한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2007년 『춘천 중앙교회사』를 발간했다. 복음전도-의료-학교-여성 사업으로 이루어지는 ‘4중 선교 구조’를 형성해 춘전 지역 선교와 근대화에 기여했다.
1898년 설립된 개신교 교회로 미국 남감리교 강원도 선교의 중심 거점 교회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식민지 시대에는 춘천 지방에서 교회-학교-병원-여성 사업의 4중 선교 구조(Quaternary Mission System)를 형성하여 춘전 지역 선교와 근대화에 기여했다.
1897년 12월 미국 남감리회 한국선교회가 처음으로 강원도 선교를 결의하고 1898년 서울 남송현교회(후의 광희문교회) 소속 교인인 나봉식과 정동열을 파송했다. 매서인인 이들은 동학과 천주교가 센 지역으로 알려진 강원도 선교에 헌신했다. 1900년 9월에 열린 선교연회에서 강원도 선교를 둘로 나누어 원산 구역(Wonsan Circuit)을 독립시키고, 춘천을 중심으로 한 북한강 유역은 서울 구역(Seoul Circuit)에 편입시켜 무스(James R. Moose, 한글명 무야곱)가 맡도록 했다. 1901년 4월 무스는 춘천에 처음으로 ‘감리교 신도 모임’을 결성했다. 즉 ‘퇴송골’에 ‘작은 속회’(a small class)를 조직하여 춘천 최초의 신앙 공동체를 조직했던 것이다. 1904년 9월 제8차 선교연회에서 춘천은 독립구역이 되었다. 이로써 감리교회 의회 조직의 기본 단위인 ‘구역회’(Circuit)가 조직되었고 ‘춘천교회’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다.
1906년 춘천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덕수가 춘천 최초의 정착 전도인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는 오늘날 춘천중앙교회 성장과 발전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아동리 그의 집에서 집회를 시작했고, 이후 아동리 예배당은 춘천지역 50여 개 교회를 관리하는 구역교회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07년 9월 연회에서 춘천선교부가 개설됨으로써 춘천 선교는 더욱 활발해졌다. 1907년 말 봉의산 동남부 산기슭과 언덕 일대에 3만 5천여 평의 부지를 확보한 선교부가 형성되고, 1908년 9월 무스 가족이 춘천으로 이사해 왔다. 이들은 춘천에 들어와 거주한 최초의 ‘서양인’ 가족이 되었다.
춘천교회는 교인이 늘어나자 1908년 여름 예배당을 배로 증축했고, 다시 1년 후, 1909년 여름에 네 칸을 더 늘여 모두 12칸 자리 예배당을 마련하게 되었다. 대판리 선교부 ‘양관’(洋館)과 더불어 아동리의 한옥예배당은 기독교의 성공적인 춘천 정착을 의미했다.
한편 무스부인은 여성 집회를 시작하는 한편 교육 사업에 착수했다. 1909년 9월 아동리 언덕에 남학교 건물을 지어 ‘기독학교’(基督學校)란 명칭으로 남학교를 시작했는데 이후 한영지서원(韓英支書院)으로 발전해 춘천 최초의 남학교가 되었다. 여학교도 같은 아동리에 한옥 교사를 마련했다. 처음에는 ‘매일학교’로 시작하였으나 멀리 지방에서 자녀를 데리고 온 교인이 있어 ‘기숙학교’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이 학교는 이후 정명여학교(貞明女學校)가 되었다.
1918년 9월 유한익(劉漢瀷) 목사가 담임 목사로 임명됨으로써 춘천교회가 설립된 이래 처음으로 한국인 단독 목회시대가 열렸다. 이후 1908년 문을 연 춘천 예수교병원과 한영지서원이 1926년 재정난으로 폐쇄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명여학교는 1930년대 들어 중등과정으로 ‘실업과’를 증설하는 등 지속적인 발전을 보였다. 춘천중앙교회와 함께 봉의산 기슭을 지켰던 선교부 병원과 학교, 유치원과 여자관은 교육과 문화 분야에서 지역사회와 주민을 위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이로써 복음전도-의료-학교-여성 사업으로 이루어지는 ‘4중 선교 구조’(Quaternary Mission System)를 형성하고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펼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춘천중앙교회는 춘천과 강원도 지역사회에서 단순한 종교 기관으로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를 이끄는 선도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해방 이후 1950년의 한국 전쟁으로 교회 건물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1955년에 미국 선교부의 지원으로 교회를 재건했다. 2001년 교회 창립 100주년 기념 예배당을 신축하여 입당했고, 2007년에는 『춘천 중앙교회사』를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