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교회 ()

목차
개신교
단체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
내용 요약

홍의교회는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이다. 1896년 훈장 박능일(朴能一)이 교산교회의 김상임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렸다. 초기 홍의교회 교인은 7명이었다. 이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 7글자를 고르고, 돌림자로 한 일(一)을 선택하여 박능일, 권신일, 김경일 등으로 개명하였다. 1년 만에 교인 수가 80여 명에 이르자 토담집 예배당을 세웠다. 1935년 일제에 의해 교회가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를 재건하였다. 1982년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새롭게 건축하였다.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목차
정의
1896년 강화도에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
연원 및 변천

홍우(鴻羽) 혹은 홍해(洪海)라고 불리던 홍의마을에 기독교가 전해진 것은 훈장이었던 박능일(朴能一)이 강화의 첫 번째 교회인 교산교회의 김상임(金商任)을 만나고 돌아와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면서부터였다. 이때가 1896년 경이다. 마을 훈장인 박능일이 개종을 하고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자 홍의마을 토착 유지들이 개종하게 되었고, 1년 만에 교인수는 80여 명에 이르렀다. 홍의마을에는 선교사의 도움 없이 토담집 예배당이 세워졌고, 서당을 학교로 바꾸어 신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초기 홍의교회의 교인들은 7명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예수를 믿는 한 형제로 돌림자를 쓰기로 결정하였고, 이들이 선택한 돌림자는 한 일(一)자였다. 이는 성을 바꿀 수는 없으니 이름의 끝자를 바꾼 것이다. ‘일’자는 ‘처음 믿었다’ 혹은 ‘한 가족이다’라는 의미로 돌림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에서 중요한 단어라고 생각한 7가지 글자를 선택해 7명 교인들이 이 글자를 하나씩 뽑았다. 그 글자는 능력 능(能), 믿을 신(信), 공경 경(敬), 받들 봉(奉), 순수할 순(純), 하늘 천(天), 빛 광(光) 등이다. 이들은 가운데 글자를 이것으로 하고 끝은 한 일자로 맞추웠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박능일과 같은 권신일, 김경일, 종순일 등이다. 이러한 개명 운동은 강화도의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초기 교인 중 ‘일’자로 끝나는 이름을 지닌 인물은 60여 명 정도였다고 한다. 반면 바다 건너 교동에는 믿을 신(信) 자를 돌림으로 했다.

홍의교회에는 또 한 가지의 특징이 있었는데, 교인들이 대대로 입어왔던 흰옷에 검은 색 물을 들여 입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실용성을 고려한 행동으로, 당시 주일이나 검은 옷을 입은 교인들이 줄을 지어 예배당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 주변 사람들은 “검정개가 지나간다.”고 놀리거나 심지어는 돌을 던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교회에 고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의논 끝에 인천 내리교회 목사와 전도사들이 내려와 장례예배를 인도하였다. 여기서 전통 장례에서 볼 수 있던 상청과 신위를 우상숭배라고 철폐하고, 상복과 두건에도 십자가 문양을 새겨 넣었다. 이것이 강화도에서 처음 시도된 기독교식 장례문화였다.

생활 속의 변화를 통해 기독교인임을 나타낸 홍의교회 교인들은 강화도 전 지역으로 퍼져나가 전도를 하였는데 읍으로 가서 강화중앙교회를 세운 주선일, 교동에 들어간 권신일, 석모도와 주문도로 들어간 윤정일, 강화 중부와 남부 선교사역을 개척한 종순일과 황양일 모두가 일자 돌림 홍의교회 교인들이었다.

1899년 박능일이 인천 제물포학당으로 나가자 김경일이 제2대 담임을 하게 되었고, 1900년 박능일이 귀향하여 강화읍 잠두교회(현 중앙교회)를 개척하였다. 1935년 교회가 일제에 의해 폐쇄되었다. 1953년 교회가 재건되었고, 1982년 새롭게 건축하였다.

현재 홍의교회는 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흔히 볼 수 있는 붉은 벽돌 예배당으로 옛날 토담집 예배당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교회 왼쪽 묘지 동산에는 홍의교회 ‘본처전도사’로 평생 교회를 지킨 김경일 전도사의 묘가 있다. 그리고 2008년 역사전시실을 개설하였다.

참고문헌

『믿음의 흔적을 찾아: 한국의 기독교 유적』(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1)
『눈물의 섬, 강화이야기』(이덕주, 대한기독교서회, 2002)
『강화기독교100년사』(이덕주·조이제, 강화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역사편찬위원회, 1994)
집필자
이순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