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매지 ()

개신교
인물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이칭
성명
최금봉(崔錦鳳)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여성
출생 연도
1896년 5월 6일
사망 연도
1983년
출생지
인천
주요 경력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체회 회장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관련 사건
대한애국부인회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최매지는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이다. 일제강점기에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으로 투옥된 바 있으며, 이후 진남포아동협회를 조직하여 아동 교육과 여성 계몽운동을 펼쳤다.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을 맡았고 제헌국회의원에 출마하였다. 한국전쟁 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와 YWCA에서 요보호여성 구제활동, 절제운동, 봉사활동을 계속하였다. 또한 평생 치과의사라는 전문성을 봉사활동에 활용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가, 해방 후 대한부인회 총본부 부회장, 국민회 안동군지부 부녀회장,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 회장, YMCA 할머니회 초대회장 등을 역임한 사회운동가.
개설

일제강점기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바 있다. 출옥 후에는 일본에서 치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치과의사로 활동하면서 진남포의 여성과 아동을 위한 주1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 안동에서 대한애국부인회 활동을 하면서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한국전쟁 후 대한여자기독교절제회를 통해 성매매 여성 구제 활동에 열중하였다. 3·1여성동지회 창립, 종교교회 장로, YWCA 할머니회 초대회장을 맡아 사회운동에 매진하였다.

인적사항

최매지는 1896년 5월 6일 인천에서 출생하였다. 인천 영화여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에서 공부하고, 1914년 이화여자중학교를 거쳐 1916년 일본 히로시마[廣島]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28년 도쿄여자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치과의원을 개원하고 진료하면서 여성 계몽운동과 아동교육사업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 정치 활동을 하였고, 한국전쟁 후 여성을 위한 사회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였다. 최매지는 1983년에 별세하였다.

주요 활동

최매지는 1919년 삼숭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중 ‘대한애국부인회’에 가입하여 서기 겸 진남포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 임시정부에 보내는 일을 하다가 1920년 진남포 신흥리교회에서 체포되었다. 평양복심법원에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복역하던 중 1922년 5월 가출옥하였다.

출옥 후 일본에 유학한 최매지는 1928년 도쿄여자치과의학전문학교 본과, 1929년 전공과를 졸업하고 귀국 후 1931년 조선총독부에 치과 면허를 신청하여 남포치과의원을 운영하면서 무료 진료 활동과 치과 외적 진료까지 감당하였다. 1933년에는 진남포아동협회를 조직하고 무산아동교육기관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면서 삼숭유치원 원감을 맡아 유치원 교육을 시작하였으며, 1935년에는 진남포여성동우회를 조직하여 여성운동을 전개하면서 농촌 운동, 금주 선전에도 열심을 보였다.

1938년 결혼 후 안동에 정착한 최매지는 삼일치과를 운영하면서 해방 후 대한애국부인회 안동군지부장, 독립촉성국민회 부녀부장을 맡아 정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46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민선의원 대의원 선거에서 안동군 대표로 당선되었고,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여성 계몽운동에 주력하기로 마음먹고 한국전쟁 이후 여성 구제 활동에 집중하였다. 부산 피난 시절에는 초량에 치과의원을 열어 진료하는 한편, '전쟁미망인회'를 조직하여 기술 교육과 직업 알선을 도모하였다. 서울로 돌아와 삼일치과를 개원하여 빈민 치료에 나서는 가운데, 1953년 대한기독교여자절제회연합회 이사 및 서울지역 회장을 맡아 여성 구제 및 봉사 활동에 노력하였다.

1960년에는 종교교회 장로와 여선교회 회장을 맡아 봉사하였고, 1967년 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황신덕, 박현숙, 이신애 등 20여 명과 3·1여성동지회 창립에 함께하였다. 또한 YWCA 할머니회 초대회장, 인덕실업학교 이사를 맡아 후진 양성과 봉사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상훈과 추모

최매지는 1971년 이화여대에서 ‘의료사업 헌신공로상’을 수상하였으며, 1973년에는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제정한 ‘용신봉사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77년에는 건국공로 표창을 수여받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에 주2.

참고문헌

단행본

윤정란,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 (국학자료원, 2003)
이화100년사편찬위원회, 『이화100년사』 (이화여자대학교, 1994)
3·1여성동지회 문화부 편, 『한국여성독립운동사: 3·1운동 60주년 기념』 (3·1여성동지회, 1980)

논문

윤은순, 「최매지의 민족운동과 사회활동」 (『여성과역사』 30, 한국여성사학회, 2019)
주석
주1

17~18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합리주의적 개화 운동. 중세적인 인습과 편견에 젖어 있는 사람에게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력을 가지게 하는 운동이다. 우리말샘

주2

죽은 뒤에 관등이 올려지거나 훈장 따위가 주어지다.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주어진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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