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레니는 1609년 동아시아 지역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이듬해 마카오에 도착하였다. 1613년에 중국 내지(內地) 진입에 성공하여 북경(北京)으로 들어간 뒤, 서광계(徐光啓)와 함께 상해(上海)로 진출하였다. 1615년에는 강소성(江蘇省)의 양주(楊州)에 부임하여 1616년까지 활동하였고, 이어 섬서성(陝西省)·산서성(山西省) 등지로 활동 범위를 넓혔으며, 1620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절강성(浙江省)의 항주(抗州)까지 진출하였다. 또 1623년에는 강소성(江蘇省)의 상숙(常熟)에 천주교를 전파하였고, 1625년에는 복건성(福建省)에 전교하기 위하여 복주(福州)로 갔다.
알레니는 복건 지역에서 가장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복주·천주(泉州)·영춘(永春) 등지에 8개의 성당과 15개의 소성당을 세웠다. 특히 복건의 사대부들로부터 중국의 경사(經史)에 정통하다고 하여 ‘서양에서 온 공자[西來孔子]’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알레니는 중국에서 활동하며 신학·문학·지리 등 다양한 유럽 문화를 소개한 30여 종의 저술을 남겼다. 이러한 여러 저술들 가운데 『삼산논학기』에 1627년의 일이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복주에서 활동하던 1627년 이후에 저술하여 1권 1책으로 간행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삼산’은 복주(福州)에 있는 지명이다.
알레니는 1624년 ... 시(詩)를 받은 일을 계기로 복주의 삼산에서 그와 천주교 교리에 대해 담론하게 되었는데, 그 내용을 대화체의 문장으로 정리하였다. 그 주된 내용은 천주교와 불교 간 교리의 차이점, 천주의 유일성, 상선 벌악, 천지 창조, 강생 구속 등에 대한 설명이었다. 그는 1627년 이후에 이를 장절 구분 없이 한 권의 책으로 엮어 간행하면서 소무상(蘇茂相)과 황경방(黃景芳)의 서문과 섭향고에게 받은 시를 서두에 수록하였다. 이 책은 초판이 간행된 이래 널리 읽혀져, 1694년에 북경에서 재판이 간행되었고,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까지 홍콩의 나자렛 인쇄소[納匝勒靜院]에서 여러 차례 중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에도 전해져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우선 이의현(李宜顯)이 1732년(영조 8)에 사은정사(謝恩正使)로 연행한 뒤에 남긴 「임자연행잡지(壬子燕行雜識)」에 중국의 천주당(天主堂)에서 이 책을 얻어 왔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1801년(순조 1) 신유사옥(辛酉邪獄)에 연루된 강이천(姜彛天)도 심문을 받을 때 “자신의 집에 이 책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1791년(정조 15)에 소각해 버렸다.”라고 자백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늦어도 1732년부터 조선에 전래되어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읽혀져 왔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