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창 영역의 서쪽에 위치한 세존사리탑(世尊舍利塔) 앞에 자리하고 있다. 현재 건물의 이름은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불린다.
조선 인조 2년(1624)에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법주사를 중건할 때, 벽암 각성(碧巖覺性, 1575∼1669)이 다시 건립하였다고 한다. 건물안에는 석가모니불과 함께 조성 시기를 알 수 없는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1992년에 조성된 신중탱(神衆幀)이 자리하고있다. 팔상전, 대웅보전, 원통보전, 사천왕문 등과 함께 법주사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건물이지만, 지금의 건물이 17세기에 지어졌는지는 단정하기 어렵다.
‘능인’은 석가모니불의 별칭으로,‘능히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이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자연히 조선시대 이전에 석가모니불을 모신 건물로 조성되었다.
약 9평 규모로, 앞면은 3칸이고 옆면은 2칸이다. 전형적인 부불전(副佛殿)으로,받침돌과 주춧돌 등은 제법 오래되어 보인다. 특히 앞면 모서리 기둥 아래의 주춧돌은 연꽃 조각과 함께 8각의 주좌(柱座) 조각을 새겨 매우 화려한 장식을 나타내었다. 지붕은 맞배지붕이고,받침은 장대석을 2층으로 쌓았는데, 가운데에 계단을 놓았다. 기둥은 둥근 기둥이고, 기둥 위의 공포는 앞면과 뒷면에 2익공(翼工)의 익공계 형식으로 구성하였다. 공포 사이에는 장식성이 강한 화반(花盤)을 두어 아름다움을 더했으며, 안팎에도 금단청을 하여 화려함을 더하였다.
뒤쪽인 서북쪽에 세존사리탑이 자리하고 있어서, 건물 뒷면의 가운데 부분은 건물 안에서 세존사리탑을 볼 수 있도록 유리창으로 만들었다. 적멸보궁의 기능을 하고 있는 셈인데, 다만 16나한상을 봉안하였으므로, 나한전의 역할도 겸하고 있다. 익공 형식의 장식은 2개의 앙서[仰舌] 중앙에 서로 다른 모습의 연꽃 장식을 위아래로 놓았는데, 이러한 모습은 대체로 조선 후기에서 나타난다. 지금의 건물은 여러 시기에 걸친 모습을 담고 있다.
현재는 적멸보궁이나 나한전으로 사용되고 있어서 초기의 건물 성격을 명확히 알 수 없지만 법주사 경내에 자리한 몇 안 되는 조선시대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