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상전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스님들이 거처하는 승방(僧房)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주위에 규모가 큰 여러 채의 요사가 건립되어 승방 공간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조선 인조 10년(1632)에 선당(禪堂)으로 건립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명확한 것은 아니다. 현재 전하는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숭정기원사임자년(崇禎紀元四壬子年)’이라고 하면서, 철종 3년(1852)에 기존의 낡은 건물을 손질하여 고쳤다고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발간된『조선고적도보』의 사진에는 당시의 건물이 ‘일(一)’자형 구조였는데, 1968년에 ‘일’자형 건물에 또 다른 ‘일’자형 건물을 직각으로 연결하여 ‘ㄴ’자형구조로 바꾸었다. 1998년에 크게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앞면 15칸, 옆면 7칸으로 약 116평의 규모이다. 곧이전의‘일’자형의 건물에다가 남향의 앞면 4칸, 옆면 4칸을 덧붙여 늘려서 앞면 15칸, 옆면 4칸의 ‘ㄴ’자 평면으로 만들었다. 앞면인 동쪽 면과 왼쪽 옆면인 남쪽 면에는 툇마루를 두어 건물 안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게 하였다. 앞면에는 4각의 기둥과 주춧돌을 사용하였지만, 서쪽 면과 남쪽 면에는 둥근 기둥과 주춧돌을 두었다. 또한 동쪽 면에는 민도리 형식을 사용하였으나 서쪽 면과 남쪽 면은 익공의 공포로 장식하였다.
이 건물은 앞면과 다른 면의 모습이 다르게 구성되었다. 곧 앞면인 동쪽 면은 스님들이 출입하는 공간으로 소박한 일반 전통주택처럼 구성하였지만, 사찰 중심 공간인 팔상전에서 바로 보이는 서쪽 면과 남쪽 면은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한편 상량문에는 중수 시기 외에도 법주사에 주석한 스님들의 명단과 함께 중수에 참여한 목수들의 명단이 있어, 당시 법주사의 규모와 목수들의 조직을 살필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 선당 건물의 모습은 물론 생활 환경에 따른 승방의 변화 과정을 알 수 있는 국가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