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주사의 주불전인 대웅보전의 동남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원당이었는데, 지금은 나한전으로 사용하고 있다.
조선 제21대 국왕인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어머니인 영빈 이씨(暎嬪李氏, 1696∼1754)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서 지은 원당이다. 언제 건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영빈 이씨가 세상을 떠난다음해인 영조 41년(1765)경에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뒤 법주사의 개산시조(開山始祖)인신라의 의신선사(義信禪師)와 전법초조(傳法初祖)인 태고선사(太古禪師)를 비롯하여, 법주사와 관련된 스님 21분의 영상(影像)과 영정(影幀)을 모신 조사각으로 사용되었다.
앞면 3칸, 옆면 3칸의 건물로, 약 13평의 규모이다. 법주사의 여느 건물과 독립된 공간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주위에 담장을 두르고 담장 앞면에 솟을삼문을 두는 등 사당 건물의 형식을 따랐다.
건물의 받침은 낮은 2단으로 구성하여 격을 높였고, 받침과 주춧돌에 쓰인 돌은 정다듬으로 규격화하여 사용하였다. 기둥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 위의 공포는 익공과 주심포 형식이 혼합된 출목익공(出目翼工)으로 구성하였다. 익공의 앙서[仰舌] 위에는 연꽃 장식을 두어 조선 후기 건축 장식의 모습을 잘 나타냈다. 모서리 기둥의 공포 장식은 다른 공포 장식과 다르게 수서[垂舌]로 꾸며 다양한 장식 수법을 보인다. 또한 일반적으로 맞배지붕에서 앞면에만 공포를 두는 방법과 다르게 옆면의 기둥 위에도 공포를 두어, 현재의 지붕이 처음에 지을 때와 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단청은 부재의 끝 부분만 단청을 한 모로단청으로, 원당 건물의 일반적인 장식 수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담장에는 기와 조각과 둥근 돌을 이용하여 길상무늬와 별무늬 등 여러 무늬를 장식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민화풍이 잘 보존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공포의 다양한 표현과 함께 2개의 쌍으로 된 건물 안의 기둥, 그리고 장식 담장 등을 통해서 조선 후기 건물의 특징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특히 사찰 안에 자리한 유교 건축물을 살필 수 있는 귀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왕실 원당이자 법주사의 몇 안 되는 조선시대 건물 중에 하나이다. 보존 상태가 좋고,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남아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